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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영화괴물
마카로니 23-11-29 17:39 599
1.괴물을 보았어요
괴물은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한 영화 중 하나였는데요, 아쉬웠던 참에 지난 주에 시사회 당첨이 되어서 미리 보고 왔습니다. (사족이지만, 시사회 프로모션으로 몬스터를 주던데 솔직히 구리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이 개봉일이군요! 후기를 미리 올려버리면 다른 분들의 예매에 누를 끼칠까 싶어 후기를 미뤄왔습니다. 막 영화관에서 나와서는 '몇몇 부분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잘 만든 건 부정할 수 없다'정도의 감상이었는데 일주일정도 생각해보니 '각본에 아쉬움이 많다' 정도로 변했네요. 왓챠 평점도 4.5에서 4로 내려버렸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괴물이 처음이라, 이게 감독의 스타일인지 만듦새가 미흡한 것인지 헷갈려서 제대로 후기를 쓰려면 감독의 다른 영화를 한두편 정도는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영화 전문이시더군요... 더군다나 전작인 '브로커'가 한국에서는 꽤 화제가 되었어서 흥미를 가지고 예고편을 봤었는데 너무 취향이 아니라 안 봤던 기억이 있거든요. 필모그래피 중 그 어떤 것도 취향일 것 같지 않아서 포기하고 편협한 시선으로 리뷰를 쓰겠습니다.

2. 주관적 시선을 이렇게 잘 다룬 영화라니
이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느끼게 한 것은 각자 다른 인물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3부작 구성입니다. 1부는 교사가 자식에게 저지른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항의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2부는 교사의 입장에서, 3부는 자식의 입장에서 진행되는데,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보게 되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감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1부는 솔직히 말하면 보기 좀 갑갑했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사람들이 상식적인 선에서 상호작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완전히 배반당하거든요. 미나토의 어머니인 사오리는 자식에게 가해진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여러 번 학교를 찾아가는데, 교장과 교사들은 공무원 유체이탈 화법만 사용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거나 이후의 대책을 말하는 대신 허리를 숙여 사과를 할 뿐이에요. 그야말로 최악의 사과입니다. 저는 사실 이 영화의 장르를 SF로 오해하고 갔는데, 학교 구성원들의 대응이 너무 영혼이 없고 고장난 사람들 같아서 사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거나 자아가 없는 건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게다가 학교 일만으로도 마음이 힘들 것 같은데, 미나토는 미나토대로 갑자기 집에서 사라진다든지 차에서 뛰어내린다든지 속 썩일 일을 많이 저질러요. 자식을 키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대상이 걱정되고, 행동 하나하나를 과대해석하게 되는 것은 누구라도 똑같지 않을까요? 저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약점을 하나 더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형상화해서 영화로 만들어놓은 것 같았어요. 사오리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2부는 좀 더 흥미진진합니다. 1부에서는 이상한 쓰레기 같았던 호리 선생이 가장(혹은 유일한) 정상인으로 보이는 신기한 일을 겪게 돼요. 1부에서도 내심 '이거 이지메 이야기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2부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이지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사람한테 아무렇지 않게 '즐겁게 웃는 네 얼굴 섬뜩해'라든지 '네가 말하니 스토커 같다'든지 '자넨 눈빛도 인상도 안 좋으니' 같은 얘기를 하는 거 좀 너무하지 않나요... 더군다나 이런 이유로 호리 선생은 사실을 말하고 자신을 변호할 권리를 박탈당하기까지 해요. 1부에서 사오리가 폭력이라고 느꼈던 행위들은 사실 미나토를 말리려고 했던 행동이거나, 실제로는 호리 선생이 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결국 이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요. 학교의 모두가 실제로는 호리 선생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호리의 희생이 당연하다는 듯 '자네가 학교를 지키는 거야'라고만 말하고 상황을 방관합니다. 이것이 일본 사회인가 싶고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어요... 호리 선생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뒤로 좀 미뤄두겠습니다.

3부는 또 다른 측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했지만, 1부와 2부에서 봤던 장면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거나 왜곡되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어요. 1부가 어른-아이 사이의 이지메, 2부가 어른-어른 간의 이지메라면 3부는 청소년 간의 이지메를 그리고 있습니다. 감독이 딱히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코멘트한 것을 봤는데, 의도하고 이지메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었다면 그냥 일본과 이지메는 뗄 수 없는 존재인가 싶기도 하네요. 재미는 있었는데 약간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김이 새기도 하고... 1부나 2부만큼 임팩트 있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3. 그러나 작위적인 면이 꽤 많다
이 영화는 1부, 2부, 3부간의 연결성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떡밥을 많이 뿌려두는 영화입니다. 1부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등장인물의 행동이 2부에서 설명되는 식이에요. 이런 연결고리가 이어져서,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의 경위를 이해하게 될 때의 시원한 감정이 좋았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떡밥 회수는 굉장히 나태합니다. 이 영화는 일본영화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가 있고, 서사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분위기를 위해 겹겹이 쌓아올린, 등장인물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시퀀스가 여럿 있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행동이나 분위기 조성을 위한 시퀀스들은 단 하나도 설명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버리는데, 이런 장면이 쌓일수록 '이건 감독이 설명하기 편한 부분만 포함해서 작위적으로 설계된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소 게으른 각본으로 느껴진 건 어쩔 수 없네요.

4. 지금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졌는데 순수하게 악으로만 이루어진 악인은 없다는 주제를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감독은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려 한 것이 아니어도 피해를 본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러기에는 호리 선생이 너무나도 죄 없는 피해자입니다. 막 부임한 사회 초년생인 호리 선생은 그저 아이들을 잘 지도하고 싶었을 뿐인데 학생들에게는 모함당하고 어른들의 정치에 이용되어 직업을 잃는다고요. 기자회견에서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사과를 하고 뉴스에 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서 괴롭히기까지 해요.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요. 심지어 영화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아요.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한들 개인으로서 얼마나 오랜 고난을 겪겠어요.

게다가 어른들에게야 정치적 이유가 있지만 영화의 주인공인 미나토를 비롯한 어린아이들이 왜 호리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미나토는 '내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을 들킬까봐'라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대기는 합니다만.... 내가 행복해지지 못할 것 같으니 남의 인생을 냅다 조지는 것이 일본의 정신인가요?? 저는 왜 아직도 호리 선생의 인생이 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끌고 가기 위해 생겼을 뿐인 게으른 설정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정말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영화에서 교장은 집중해서 조명되지도 않고, 딱히 이면이 없이 투명한 인물로 보이거든요. 자기 살자고 죄 없는 사람 조지는 인물에게 무슨 서사가 필요한가요. 그런데 교장은 3부에 뜬금없이 등장해서 악역에게도 나름의 슬픔과 사정이 있다는 듯 갑작스럽게 '난 슬플 때 트럼펫을 불어'같은 대사를 하고 미나토에게도 그 방법을 알려줘요. 애매하게 면죄부를 주고 갈등을 해소하려 만든 것 같은 장면을 보고 참 어이가 없었어요. (시퀀스 자체도 참 별로였는데, 이 장면에서의 트럼펫 소리가 1부, 2부, 3부에 모두 들리거든요? 같은 시간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비추기 위해 이렇게 연출한 것 같은데, 이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나는 것 같다고 느껴서 거슬리는 포인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요. 시사회 보고 난 후 다른 사람들 감상이 궁금해서 좀 검색해봤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상평이 많았습니다.
배려가 넘쳐??
아름다운 이야기???
지금 한사람의 인생이 디비졌는데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누구의 시점으로 봐도 아름답지 않은 진흙탕 이야기인데 영화를 어떻게 보면 그런 감상이 나오는지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5.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으면 입을 닥치는 것이 감독의 미덕인듯...
결말이 딱히 마음에 드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중의적으로 읽히는 열린 결말을 만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감독이 GV에서 '그 결말은 이런 의미였다'고 단정지어버린 것을 봐버렸지 뭐예요. 이 영화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한두개는 아니었지만 저는 그 발언을 보고 엔딩 시퀀스가 가장 별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퀴어 소재를 사용해놓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 물론 퀴어라는 소재가 신성시되어야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너무 대상화시켜서 써먹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지향성으로 혼란을 겪는 초등학생 둘 죽이는 영화 찍으면 재미있습니까? 아니 진짜 그냥 궁금해서요

6. 재미있게 보기는 했어요..
어째 또 욕만 잔뜩 한 것 같은데 감상과는 별개로 여전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력이 되면 한 번 더 보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영화관에서 보고 싶지는 않고요. 하여튼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저랑은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앞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더 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여러모로 일본 아니면 나오기 힘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사람 묻어서 조용히 지나가면 좋은 거라는 사고방식, 이지메, 호모포빅한 사회 분위기가 모두 합쳐져야 나올 수 있는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일본 문화권 외의 사람인 제게는 잘 와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퀴어 코드에 대한 존중 없이 그냥 흥미로운 소재 정도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론적으로는 제목과 캐치프레이즈를 한참 잘못 짓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다른 등장인물의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묘사할 때 '괴물이거든요'라고 말하거나, 몬스터 부모처럼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는 데서 나쁘지 않은 활용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 끼워맞췄다는 느낌이 더 강하네요. 영화 자체가 전체적으로 감정과잉이라고 느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마카로니

감독: “영화를 보다 ‘결국 괴물은 나였구나’ 생각하시는 분이 적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나: 제가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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