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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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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no. 22  괴물

1.괴물을 보았어요 괴물은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한 영화 중 하나였는데요, 아쉬웠던 참에 지난 주에 시사회 당첨이 되어서 미리 보고 왔습니다. (사족이지만, 시사회 프로모션으로 몬스터를 주던데 솔직히 구리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이 개봉일이군요! 후기를 미리 올려버리면 다른 분들의 예매에 누를 끼칠까 싶어 후기를 미뤄왔습니다. 막 영화관에서 나와서는 '몇몇 부분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잘 만든 건 부정할 수 없다'정도의 감상이었는데 일주일정도 생각해보니 '각본에 아쉬움이 많다' 정도로 변했네요. 왓챠 평점도 4.5에서 4로 내려버렸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괴물이 처음이라, 이게 감독의 스타일인지 만듦새가 미흡한 것인지 헷갈려서 제대로 후기를 쓰려면 감독의 다른 영화를 한두편 정도는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영화 전문이시더군요... 더군다나 전작인 '브로커'가 한국에서는 꽤 화제가 되었어서 흥미를 가지고 예고편을 봤었는데 너무 취향이 아니라 안 봤던 기억이 있거든요. 필모그래피 중 그 어떤 것도 취향일 것 같지 않아서 포기하고 편협한 시선으로 리뷰를 쓰겠습니다. 2. 주관적 시선을 이렇게 잘 다룬 영화라니 이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느끼게 한 것은 각자 다른 인물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3부작 구성입니다. 1부는 교사가 자식에게 저지른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항의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2부는 교사의 입장에서, 3부는 자식의 입장에서 진행되는데,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보게 되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감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1부는 솔직히 말하면 보기 좀 갑갑했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사람들이 상식적인 선에서 상호작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완전히 배반당하거든요. 미나토의 어머니인 사오리는 자식에게 가해진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여러 번 학교를 찾아가는데, 교장과 교사들은 공무원 유체이탈 화법만 사용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거나 이후의 대책을 말하는 대신 허리를 숙여 사과를 할 뿐이에요. 그야말로 최악의 사과입니다. 저는 사실 이 영화의 장르를 SF로 오해하고 갔는데, 학교 구성원들의 대응이 너무 영혼이 없고 고장난 사람들 같아서 사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거나 자아가 없는 건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게다가 학교 일만으로도 마음이 힘들 것 같은데, 미나토는 미나토대로 갑자기 집에서 사라진다든지 차에서 뛰어내린다든지 속 썩일 일을 많이 저질러요. 자식을 키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대상이 걱정되고, 행동 하나하나를 과대해석하게 되는 것은 누구라도 똑같지 않을까요? 저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약점을 하나 더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형상화해서 영화로 만들어놓은 것 같았어요. 사오리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2부는 좀 더 흥미진진합니다. 1부에서는 이상한 쓰레기 같았던 호리 선생이 가장(혹은 유일한) 정상인으로 보이는 신기한 일을 겪게 돼요. 1부에서도 내심 '이거 이지메 이야기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2부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이지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사람한테 아무렇지 않게 '즐겁게 웃는 네 얼굴 섬뜩해'라든지 '네가 말하니 스토커 같다'든지 '자넨 눈빛도 인상도 안 좋으니' 같은 얘기를 하는 거 좀 너무하지 않나요... 더군다나 이런 이유로 호리 선생은 사실을 말하고 자신을 변호할 권리를 박탈당하기까지 해요. 1부에서 사오리가 폭력이라고 느꼈던 행위들은 사실 미나토를 말리려고 했던 행동이거나, 실제로는 호리 선생이 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결국 이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요. 학교의 모두가 실제로는 호리 선생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호리의 희생이 당연하다는 듯 '자네가 학교를 지키는 거야'라고만 말하고 상황을 방관합니다. 이것이 일본 사회인가 싶고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어요... 호리 선생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뒤로 좀 미뤄두겠습니다. 3부는 또 다른 측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했지만, 1부와 2부에서 봤던 장면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거나 왜곡되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어요. 1부가 어른-아이 사이의 이지메, 2부가 어른-어른 간의 이지메라면 3부는 청소년 간의 이지메를 그리고 있습니다. 감독이 딱히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코멘트한 것을 봤는데, 의도하고 이지메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었다면 그냥 일본과 이지메는 뗄 수 없는 존재인가 싶기도 하네요. 재미는 있었는데 약간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김이 새기도 하고... 1부나 2부만큼 임팩트 있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3. 그러나 작위적인 면이 꽤 많다 이 영화는 1부, 2부, 3부간의 연결성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떡밥을 많이 뿌려두는 영화입니다. 1부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등장인물의 행동이 2부에서 설명되는 식이에요. 이런 연결고리가 이어져서,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의 경위를 이해하게 될 때의 시원한 감정이 좋았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떡밥 회수는 굉장히 나태합니다. 이 영화는 일본영화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가 있고, 서사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분위기를 위해 겹겹이 쌓아올린, 등장인물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시퀀스가 여럿 있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행동이나 분위기 조성을 위한 시퀀스들은 단 하나도 설명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버리는데, 이런 장면이 쌓일수록 '이건 감독이 설명하기 편한 부분만 포함해서 작위적으로 설계된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소 게으른 각본으로 느껴진 건 어쩔 수 없네요. 4. 지금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졌는데 순수하게 악으로만 이루어진 악인은 없다는 주제를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감독은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려 한 것이 아니어도 피해를 본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러기에는 호리 선생이 너무나도 죄 없는 피해자입니다. 막 부임한 사회 초년생인 호리 선생은 그저 아이들을 잘 지도하고 싶었을 뿐인데 학생들에게는 모함당하고 어른들의 정치에 이용되어 직업을 잃는다고요. 기자회견에서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사과를 하고 뉴스에 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서 괴롭히기까지 해요.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요. 심지어 영화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아요.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한들 개인으로서 얼마나 오랜 고난을 겪겠어요. 게다가 어른들에게야 정치적 이유가 있지만 영화의 주인공인 미나토를 비롯한 어린아이들이 왜 호리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미나토는 '내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을 들킬까봐'라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대기는 합니다만.... 내가 행복해지지 못할 것 같으니 남의 인생을 냅다 조지는 것이 일본의 정신인가요?? 저는 왜 아직도 호리 선생의 인생이 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끌고 가기 위해 생겼을 뿐인 게으른 설정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정말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영화에서 교장은 집중해서 조명되지도 않고, 딱히 이면이 없이 투명한 인물로 보이거든요. 자기 살자고 죄 없는 사람 조지는 인물에게 무슨 서사가 필요한가요. 그런데 교장은 3부에 뜬금없이 등장해서 악역에게도 나름의 슬픔과 사정이 있다는 듯 갑작스럽게 '난 슬플 때 트럼펫을 불어'같은 대사를 하고 미나토에게도 그 방법을 알려줘요. 애매하게 면죄부를 주고 갈등을 해소하려 만든 것 같은 장면을 보고 참 어이가 없었어요. (시퀀스 자체도 참 별로였는데, 이 장면에서의 트럼펫 소리가 1부, 2부, 3부에 모두 들리거든요? 같은 시간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비추기 위해 이렇게 연출한 것 같은데, 이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나는 것 같다고 느껴서 거슬리는 포인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요. 시사회 보고 난 후 다른 사람들 감상이 궁금해서 좀 검색해봤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상평이 많았습니다. 배려가 넘쳐?? 아름다운 이야기??? 지금 한사람의 인생이 디비졌는데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누구의 시점으로 봐도 아름답지 않은 진흙탕 이야기인데 영화를 어떻게 보면 그런 감상이 나오는지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5.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으면 입을 닥치는 것이 감독의 미덕인듯... 결말이 딱히 마음에 드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중의적으로 읽히는 열린 결말을 만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감독이 GV에서 '그 결말은 이런 의미였다'고 단정지어버린 것을 봐버렸지 뭐예요. 이 영화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한두개는 아니었지만 저는 그 발언을 보고 엔딩 시퀀스가 가장 별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퀴어 소재를 사용해놓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 물론 퀴어라는 소재가 신성시되어야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너무 대상화시켜서 써먹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지향성으로 혼란을 겪는 초등학생 둘 죽이는 영화 찍으면 재미있습니까? 아니 진짜 그냥 궁금해서요 6. 재미있게 보기는 했어요.. 어째 또 욕만 잔뜩 한 것 같은데 감상과는 별개로 여전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력이 되면 한 번 더 보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영화관에서 보고 싶지는 않고요. 하여튼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저랑은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앞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더 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여러모로 일본 아니면 나오기 힘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사람 묻어서 조용히 지나가면 좋은 거라는 사고방식, 이지메, 호모포빅한 사회 분위기가 모두 합쳐져야 나올 수 있는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일본 문화권 외의 사람인 제게는 잘 와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퀴어 코드에 대한 존중 없이 그냥 흥미로운 소재 정도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론적으로는 제목과 캐치프레이즈를 한참 잘못 짓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다른 등장인물의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묘사할 때 '괴물이거든요'라고 말하거나, 몬스터 부모처럼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는 데서 나쁘지 않은 활용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 끼워맞췄다는 느낌이 더 강하네요. 영화 자체가 전체적으로 감정과잉이라고 느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영화

no. 21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0. 해석 보기 전에 대충 적어보는 궁예 개봉 전부터 말이 많더니, 보고 온 트친들이 '난해하다' '2시간 내내 혼나고 왔다'는 평만 하더라고요. 대체 어떻길래 다들 이런 감상을 남기시나 싶어 최대한 사전정보 없이 보고 왔습니다. 의외로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보지 못한 게 더 많겠지만? 남겨두면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대충 간결하게 후기를 적은 후에 해석을 봐야겠습니다. 저의 얄팍한 감상은 '이거 전쟁 얘기하는 영화군'입니다. 영화 전반에 깔린 전쟁과 정치에 대한 은유를 많이 느꼈어요. 사실 벌써 영화가 좀 가물가물해지려고 해서 간단히 쓰고 얼른 똑똑한 사람들이 쓴 해석 보러 가야겠어요. 1. 마히토는 일본이다 사실 단언하기 참 그렇기는 한데 이 영화가 전쟁을 은유하는 영화이고 일본이 전범국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마히토가 조명하는 것은 일본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연히 일본인에게만 하고 싶은 질문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미야자키 하야오가 "너네 어떻게 살 거냐"라고 묻고 싶은 건 1차적으로는 일본인이라는 느낌이네요. 이래서 저는 영화 보는 내내 단 한 순간도 혼났다고 느끼지 못한 것 같기도 해요. 하여튼 내가 혼난 건 아닌듯? 제가 지브리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는데, 마히토는 지브리 주인공 중에서도 꽤 되바라지다고 해야 할까요. 뻣뻣한 느낌 아닌가요? 말투도 10대 주인공치고는 딱딱하다고 느꼈어요. 지브리에서 어머니를 잃은 소년이라면 좀 더 유약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히토는 강하다 못해 영악해요. 아버지는 '시골 학교에 차를 타고 가면 다들 놀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전쟁통에 부유할 이유가 사실 달리 뭐가 있겠어요. 전쟁에 휘말려버린 민간인으로서는 부의 흔적을 보면 반감이 들 뿐이죠. 아이들에게 마히토가 얻어맞게 되는 것도 개인 대 개인의 입장으로 봤을 때나 억울한 상황인 거지, 사실 전쟁의 발발에 아무 의견도 더하지 못하고 휩쓸릴 수밖에 없는 민간인과 전쟁을 결정하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권력자의 관계로 생각하면 얻어맞을만한 일입니다. 전쟁을 하고 싶은 민간인은 없어요. 그런데 마히토는 자신을 피해자 입장에 놓기 위해 스스로 자해해요. 심지어 좀 얻어맞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부상이에요. 자해로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일본이 전쟁에서 사용했던 카미카제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결말부에서 '이것은 내 악의의 증거'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민족적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히토 아버지 비중이 적어서 그냥 여기 같이 적는 거지만, 사실 저는 '주식 올라야 하니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의 친구들을 그에게서 느꼈습니다. 물론 전쟁이 누군가에게는 금전적 이득이 되지만 그런 걸 쫓으면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다가갈 수 없게 되죠. 아버지가 철저하게 영화 내의 이야기에 참여할 수 없는 외부인으로 그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남자 창작자들이 남자는 현실과 같이 있는 그대로 -이 영화의 경우에서는 가족 구성원에 속해있을 뿐 가정에서의 참여도로 따지면 외부인과 다름없는 지위로- 묘사하고, 여자는 현실과 상관없이 서사에 도움이 되고 보는 이에게 만족을 줄 판타지로 그리는 경향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아버지가 이룩한 부 때문에 마히토까지 학교에서 눈총을 받는 거 보면 연좌제가 떠오르기도 해요. (선대의 잘못이 자식의 잘못은 아니다-라는 메세지를 주고 싶었을수도 있겠지만 개인으로서의 연좌제와 국가의 역사적 책임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죠) 이건 좀 작품 외적인 얘기인데, 일본 컨텐츠는 '혈통주의'가 참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마히토도 그렇고, 주인공은 항상 특별한 혈통의 일원이잖아요. '일반인 사이에 섞여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실은 특별한 존재였다'는 장치 없이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으신지 종종 궁금합니다. 2. 새는 적군의 군인이다(왜가리 포함) 대놓고 군대인 앵무 군단이 나오니 이건 이견이 있기 힘들지 않을까요? 각종 새의 무리들이 마히토를 해치려 날아들기도 하고요. 적대적인 집단인 건 확실하죠. 특히나 앵무새들은 아예 마히토를 잡아먹으려 하잖아요? 그어살에서는 펠리컨과 와라와라, 앵무새와 마히토의 구도로 새 집단이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으려 드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와요. 작중에서 펠리컨의 입을 빌려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되는 장면이기도 하죠. 1차원적으로는 약육강식에 대한 비유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을 죽이게 될 수밖에 없는' 군인들을 조명하는 장치라고도 느꼈습니다. 앵무새 또한 마히토를 그냥 해하려는 게 아니고 먹으려 들잖아요. 새들이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아무 이유 없이 마히토를 공격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는 간단한 명제예요. 그러나 결국 그들 또한 개인으로 이루어졌기에 화합의 여지가 있어요. 특히나 왜가리와 마히토의 관계가 그래요. 처음엔 대립하고, 서로를 위협하고, 실제로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협력하게 되잖아요. 둘의 관계에서는 중간 단계가 특히 흥미로웠어요. 뒤통수 치려다 다시 한 번 도움을 받고 완전한 협력으로 넘어가잖아요. 전쟁 중에도 적군 병사를 해치지 않은 사례들이 떠올랐어요. 마지막에 앵무새들이 마히토의 세계로 넘어가는 장면은 피난과도 겹쳐 보이지 않나요? 나를 죽일 수 있는 강한 적인 것 같지만 압도적인 죽음 앞에서는 그들도 나와 같이 살고 싶어하는 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3. 큰할아버지와 앵무새 왕은 대립 관계에 있는 정치인이다 민간인과 군인은 결국 전쟁이라는 이념 싸움에 이용되는 장기말일 뿐입니다. 정말 이득을 보는 건 누구일까요? 결정권을 가진 정치인뿐이겠죠. 장기말인 마히토와 앵무새는 싸우지만, 정작 그 우두머리로 볼 수 있는 큰할아버지와 앵무새 왕은 함께 대화를 하며 걸을 수 있어요. 싸움은 수족끼리 하게 하고 정작 당사자들은 그러지 않는 구도, 꽤 익숙하지 않나요? 군인과 민간인을 희생하지만 그들에게 절대적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나름의 이상이 있습니다. 큰할아버지의 이상은 영화 내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생략하고, 저는 앵무새 왕 또한 자신의 이상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느꼈어요. '왕답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대사에서요. 이 얼마나 사명감이 드러나는 대사인가요? 앵무새 왕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만의 이상이자 선을 위해 나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그 이상이나 이상을 이루려는 방식이 옳든 옳지 않든간에요. '나를 배우는 자는 죽는다' 무덤 입구의 이 문구가 참 좋았거든요. 보자마자 이건 틀림없이 핵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기술의 발달이 인류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주제는 국가를 막론하고 자주 등장하는 소재기도 하고요. 큰할아버지 디자인 아인슈타인 닮지 않았나요? 그냥 나온 디자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세계에서 "천국인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앵무새 병사와, 아무 감흥 없는 앵무새 왕이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민간인과 일반병에게 경이로운 것이 권력자에게는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한 간극이 보여서 좋았어요. 분위기는 다르지만, 겨울 궁전을 처음으로 본 러시아 혁명군과도 같은 결인 것 같습니다. 4. 히미와 나츠코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히미와 나츠코는 각각 과거와 현재의 이념이라고 느꼈어요. 제가 홍콩영화를 하도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이런 식으로 상실한 과거를 대체하는 현재의 무언가가 있으면 보통 국가 정세를 은유하는 장치더라고요. 히미는 과거입니다. 마히토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과 일본인들이 툭하면 다이쇼로망 운운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꽤 비슷하지 않나요? 하지만 마히토가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히미는 버섯구름과 비슷한 형태의 폭발을 만드는 과거예요. 죽은 사람이 인과를 비틀어 돌아오면 안 되듯이, 핵전쟁도 돌아와서는 안 됩니다. (히미는 불꽃놀이처럼 터지는 불로 새를 죽이죠. 공교롭게도 마침 최근에 불꽃놀이가 철새에게 해롭다는 트윗을 봤어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걸 염두에 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츠코는 현재예요.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이미 닥쳐와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마히토가 나츠코를 '싫어한다'고 표현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하지는 않죠. 남의 입을 빌려서지만 '너는 나츠코를 싫어하잖아'라는 말도 들었고요.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나츠코는 마히토에게 다정해요. 사실 이야기를 편리하게 만들어 주고 남성 주인공을 이유 없이 포용하는, 무조건적 조력자 캐릭터로 보여서 캐릭터의 쓰임이 썩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쓰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급진적인 사회의 변화는 비록 그 방향이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발이 생깁니다. 저는 노동자라서 한국에서 토요일이 휴일이 되었을 때의 반발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막연한 반감 따위를 생각했지만(....) 저 자리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겠죠? 마히토는 히미의 도움을 받아 나츠코를 구해내는 데 성공하는데,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더 나은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히미가 마히토와 같이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가 예정대로의 죽음을 맞는 것은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적시고요. 전쟁이라는 게 다양한 이해관계가 엮여 발발하는 것이다 보니, 과거의 사람들이 현재의 역사를 안 채 다시 과거로 돌아간들 결국 과거는 되풀이될 것입니다. 그때는 그래야 했죠.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찾던 큰할아버지가 결국 히미와 마히토 모두 돌려보내기로 한 것은 과거의 이념과 과거로부터 이어진 감정을 현대인들이 품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메세지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건 다 옛날 일이니까 과거는 잊고 모두 나카요쿠해요'라는 꼬움이 아니 느껴질 수는 없지만... 원론적으로는 좋은 얘기죠. 한편 히미는 이미 마히토를 낳았으며 '너를 낳는 것은 멋진 일이니까'라고 말하고, 나츠코 또한 임신 중이며 자식을 낳죠. 음.. 대충 어떤 얘기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저는 남자가 그리는 임신 모티브가 싫습니다. 굳이 생각 안할래요. 너를 낳아야 하니 죽음을 각오하고 원래의 세계로 다시 가겠다고 말하는 어린아이 모습을 했으나 모성을 가진 여캐라니 죽어도 싫어 징그러워 5. 식사 지브리 하면 식사죠. 그어살에서도 '식사'의 모티브가 참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마히토는 큰할아버지 이외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한 번씩 식사를 하지 않나요? 나츠코랑 한 번, 저택의 할머니들이랑 한 번, 키리코랑 한 번, 히미랑 한 번. 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먹을 식에 입 구 자를 쓰는 식구라고 부르는 것처럼, 창작물에서의 식사는 거진 소통의 표현입니다. 식사 모티브가 약육강식으로 한 번 비틀려 중첩해 등장한 것도 흥미롭네요. 6. 끝! 그냥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펠리컨들이 들이닥쳐서 무덤 문을 열고 '가자'고 속삭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이 참 좋아요. 대충 순수하게 영화만 보고 느낀 것은 이 정도고요... 해석글을 보면 이 후기가 참 바보같아질 수도 있는데 영화에 정답이 어디있습니까. 하여튼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다른 사람들 해석이랑 후기 좀 보고 다른 게 생각이 나면 더 추가하고, 아니면 그냥 이대로 남을 것 같습니다.... +추가) 다른 사람들 후기 보고 왔는데 그럭저럭 잘 보고 온 것 같네요. 후기 추가는 없음!
영화

no. 20  스포일러 없이 써보는 간략한 부국제 상영작 후기(시가렛 걸/빌려온 시간/본인 출연 제리/가스퍼의 24시간)

0. 부국제에 다녀왔습니다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막상 후기를 쓰려고 보니 부산까지 다녀와서 영화를 4개밖에 안봤나 싶기도 한데... 보고 싶은 영화는 정말 많았지만 타임테이블을 고려하다 보면 몇 개 못 보게 되더라고요. 어쩌다보니 중화권/인도네시아 영화만 보고 왔는데 이것도 운명인 것 같습니다. 영화 각각의 후기는 물론 따로 쓸 예정이지만 부국제에 출품된 영화는 국내 개봉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여 스포일러 없이 간략히 리뷰를 하려고 합니다. 1. 시가렛 걸 1960년대 인도네시아, 탁월한 재능을 지닌 정향 담배 장인이 업계의 전통에 맞서 사랑과 자아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같은 날 상영하는 영화 중 그나마 흥미있는 시놉시스를 가진 영화가 이것뿐이라 가볍게 골랐는데, 만약 다른 보고 싶던 영화와 시간이 겹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한 상황이라면 좀 슬펐을 것 같아요. 제가 기대한 것은 1960년대 인도네시아의 담배 산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전형적인 '아가씨와 충직한 돌쇠' 플롯의 로맨스물이었습니다.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미모 더치페이가 잘 됐다는 점에서 즐겁게 보기는 했는데... 인도네시아의 탈을 썼을 뿐 너무나 익숙한 넷플릭스풍 가벼운 로맨스라서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내가 연차 내고 부산까지 가서 보고 싶었던 건 이런 킬링타임 영화가 아니다.... 어째 어정쩡하게 끝난다 싶었는데 원작 도서가 있더라고요? OSMU의 시대 언제 끝나나요 대체?? 저는 소설 원작 컨텐츠가 정말 별로입니다.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필연적으로 이야기가 붕 뜨는 부분이 꼭 생기는 것 같아요. 할 거면 각색 제대로 해... 2. 빌려온 시간 결혼을 앞둔 막유엔팅은 20년 전에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 홍콩으로 떠난다. 감독 정보를 대충 보고 가서 감독이 중국인인지 홍콩인인지, 이게 중국 영화인지 홍콩 영화인지 보는 내내 좀 헷갈렸어요. 영화에서 광동어가 들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짜잔! 감독은 광동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감독의 국적을 알게 된 GV 이후에 오히려 더 이해할 수 없게 된 영화입니다. 감독이 '중국과 홍콩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중국인이 만든 홍콩에 대한 영화라니까 눈을 세모낳게 뜨고 보게 되더라고요. 아무리 홍콩과 지리적, 문화적으로 비교적 가깝고 중국의 정체성이 옅은 광동 출신이라지만 중국인이 홍콩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싶었어요. 광동성이 중국 내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의 의견이 가장 강하다고는 하지만 이 영화를 정치적인 사안과 연관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전혀 없어 보였고요. (물론 그런 의지가 있다 해도 본토로 돌아갈 거라면 입을 함부로 털 수 없긴 하겠죠) 그런데 사실 제가 이렇게 비판적인 의견을 고수하게 된 건, 영화만을 두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중국과 홍콩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건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입니다. 대표적인 홍콩 감독인 왕가위의 영화를 생각해보면, '사랑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예전 연인'같은 형태로 홍콩을 은유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이 플롯으로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홍콩 독립보다는 '하나의 중국'에 가까운 영화인 것 같아요. 제 짧은 식견과 우매함의 봉우리 때문에 이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나이브한 중국 영화로밖에 볼 수가 없네요. 한 번 더 보든지 다른 사람들 리뷰를 좀 봐야 이 영화의 스탠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볼 정도로 좋지는 않았어서 좀 곤란합니다... 3. 본인 출연, 제리 대만에서 온 이민자 제리는 은퇴 후 미국 휴양도시 올랜도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남성이다. 어느 날 중국 본토에 있는 비밀경찰에게 전화가 걸려 오고, 제리가 대규모 돈세탁 사건의 용의선상에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으로 송환되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제리.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기가 거래하는 은행의 사진을 몰래 찍어 보내는 등 전화상으로 중국 비밀경찰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하는데.. 보이스피싱에 대한 영화입니다. 보다 열받아서 조금 울었어요. 제발 이 이야기가 픽션이었으면 했는데 실화라지 뭐예요... '가족과 봐도 되는 영화'를 넘어 '부모님에게 강제 시청하게 만들어야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오프닝과 엔딩의 미국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이 좋았어요. 영화는 실화일지언정, 부정적인 감정으로 마무리하기보다는 비교적 유쾌하게 영화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더라고요.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각나는 영화입니다. 제목에 끌려서 본 영화이고 이미 영화의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어서 새로워질 것 없는 제목 같아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이 다시 한 번 와닿아요. 각박하고 교묘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나날이 취약해지는 부모님을 위해 이 영화를 꼭 보여주세요. 4. 가스퍼의 24시간 2032년 인도네시아. 다소 불량한 아마추어 탐정 가스퍼는 정부가 연루된 대량 학살 사건을 수사한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친구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고 인신매매 악당을 추적한다. 하지만 인공 심박동기가 망가지는 바람에 2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가스퍼는 아그네스와 킥 등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완결하고자 한다. 부국제에서 본 4편의 영화 중 가장 좋았어요! BGM 사용이 좋더라고요. 까지 쓰고 나니 할 말이 없네요... 호쾌한 액션영화에 가깝습니다. 나름대로 철학적인 물음도 있고요. 중간중간 재치 있는 개그신들이 꽤 재미있었어요. 대사량이 많은 편이고 소설 원작 영화라서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도 많았는데, 자막이 세로쓰기 자막으로 나와서 보는 데 좀 애를 먹었습니다. (한국영화제에서 한글자막 이딴식으로 내보낼거야???)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부국제에서 본 네 개의 영화 중 가장 잘 만든 영화 아닌가 싶어요. 영화 각색이 이가 좀 빠졌다는 감상을 받았어서 원작소설이 궁금한데 국내 정발 안 되겠죠.... 5. 끝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사실 운명적으로 좋은 영화는 만나지 못했고요, 영화 보고 밥 먹고 영화 보고 밥 먹는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보고 싶었는데 티켓팅 실패한 영화와 보고 싶었는데 시간 안 맞아서 못 본 영화만 트위터에서 알티타는 걸 보니까 영화 픽을 잘못했나 싶어 좀 슬퍼지긴 하는데 뭐 어쩌겠어요. 그치만 전 역시 영화가 좋고 내년에 또 가고 싶긴 해요. 비록 부국제 기간에 숙박비는 바가지고 사람은 쓸데없이 너무 많고 GV 질문은 수준 이하긴 하지만요....
영화

no. 19  빨강, 파랑, 어쨌든 찬란

1. 이걸 어떻게 안 봐 미국 대통령과 영국 왕자가 연애하는 얘기라니 이걸 어떻게 안 봐요. 저 한 문장만 봐도 벌써 재밌어!!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아마존 프라임에 나오자마자 바로 봤답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갖다쓴 것 치고는 나이브하고 평탄하기는 했는데 배우가 잘생겨서 나름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봤습니다. 원작소설이 미국에서 잘 팔렸다던데 어떤 감성으로 잘 팔린 걸까요? 트와일라잇도 사실은 인소에 가깝다던데 아마 비슷한 계열 아니었을까 싶어요. 2.퀴어물의 얄팍함이란 2010년대 초반쯤 퀴어영화를 꽤 많이 봤었는데, 서사적 설득력이나 만듦새가 아쉬운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BL/GL이 상업적 장르로서 오픈리하게 다뤄지던 시절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고, 게이 당사자가 그린 퀴어는 BL과는 다른 맛이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소자본 영화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별로였던 영화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빨강파랑어쨌든찬란은 이런 얄팍함에서 2010년대 한국 퀴어영화와 결을 함께합니다.굳이 한국영화로 한정한 건.. 해외에서는 1900년대에도 브로크백마운틴이나 춘광사설같은 수작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왔잖아요. 사실 2020년대에 제작되는 퀴어 컨텐츠라고 뭐 대단히 질이 좋은 건 아니지만, 웹드라마 만듦새 조악한 건 장르랑 무관한 일이고, 무엇보다 한국에는 이제 윤희에게라는 최고의 퀴어영화가 있으니 2010년대 퀴어영화로 한정하겠습니다. 어쨌든 멀리 돌아왔는데... 저런 이유로 2010년대 이후로는 퀴어물을 안 보게 되었어요. 루키즘적 발언을 하자면 퀴어영화에는 미남 배우가 많이 안 나오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건 오로지 잘생긴 남자라고요. 화면 밖에도 있는 평범한 남자들이 어떤 서사로 사랑해봤자 와닿지 않는다고요. 김경진이 유상무를 동경해서 농구를 시작하든 말든 알 바 아니잖아요... 어쨌든 퀴어 연기는 기피배역인 것 같고, 잘생긴 배우들은 잘 팔릴테니 이런 거 안 해도 다른 배역이 있겠죠... 그나마 최근에 배우 얼굴에 홀려서 본 게 파이어버드인데 이것도 보고 나서 너무 별로여서 욕을 잔뜩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빨강파랑어쨌든찬란은 배우 둘 다 잘생겨서 스토리가 좀 얄팍해도 볼 맛이 났어요. 미남 최고. 그리고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해맑음입니다. 영화가 얄팍한데 비극이면 진짜 맥빠지거든요? 퀴어들이 차별받는 게 현실이다 보니 퀴어영화도 자연스럽게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거 없어요. 보수적인 영국 왕자가 아웃팅당해도 다정한 영국 국민들은 무지개 깃발 들고 왕성까지 와서 응원해줍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왕 영화가 나이브할거면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실제 인간의 삶처럼 입체적이지 못할거면 갈등이 없는 편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3.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니 근데 영화가 얄팍해도 너무 얄팍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실성 챙길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는 장면이 종종 나와서 웃겼어요. 헨리 왕자가 추억의 장소랍시고 문 닫은 박물관 따고 들어갈 때는 국중박을 회의장소로 쓰고 싶어하는 현 정권 생각나서 어쩐지 로맨틱하다는 생각보다는 권력층의 횡포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네요. 마초이즘의 성지 텍사스에서 게이 아웃팅당한 아들이 있는 대통령이 100% 몰표를 받아 역전에 성공하는 장면에서도 '전라도에도 빨간당 찍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되냐' 싶었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국대통령 가족이 너무나도 퀴어프렌들리한 이상적인 부모님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도 났네요. 아들 아웃팅당하자마자 동요도 안하고 그냥 쿨하게 감싸안아주심... 이게 다양성의 나라 미국일까요? 최근 미국 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성애자가 더 드물다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물론 이런 걸 염두에 둔 건 아니겠지만요... 모든 갈등이 5분 안에 끝나는 것도 좀 웃긴 포인트였네요. 혐관으로 홍보하길래 싸우다가 정드나보다 싶었는데 체감상 혐관 비중은 20분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그냥 알콩달콩 문자로 연애하다가 눈 맞고 아주 미약한 반대에 부딪힐 뻔하다가 할아버지 앞에서 키스나 하고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는 그런 시놉시스였네요. 보통 모님이랑 같이 영화 보면 끝나고 나서도 1시간씩 같이 떠들곤 하는데, 이 영화는 그냥 잘생겼다 재밌었다~ 말고는 할 말이 없어서 금방 해산했습니다. 왜 할 말이 없냐.... 그것은 얄팍하기 때문이겠죠? 헨리 왕자 얼굴 한 번 더 보고싶어서 한 번 더 볼까 생각했는데 미적거리다가 아마존프라임 체험기간이 끝나버렸지만 전혀 아쉽지 않은 걸 보면 그냥 한 번 보면 족한 영화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오로지 이것만 보기 위해 아마존프라임 결제하는 건 비추해요.
드라마

no. 18  멋진 징조들

1. 드디어 멋진 징조들을 보다 가만히 트위터만 하고 있어도 연성이 굴러들어오는 장르들이 종종 있잖아요. 멋진 징조들도 제게는 그 중 하나였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는 몰라도 아지라파엘과 크롤리의 존재는 알고 있었거든요. 천사와 악마라니 뭐 하는 작품인가 궁금은 했지만 귀찮아서 '나중에 봐야지'라는 생각도 안 한지 어언 n년... 다른 작품 보려고 아마존 프라임 체험기간을 시작하려다 6부작 드라마인 것을 알고 냉큼 시작해버렸습니다. 1년 결제한 왓챠는 내버려두고 체험기간이 1주일인 새 플랫폼에서 뽕을 뽑으려 하다니 참 이상하군요. 2. 유치해! (Positive) 저는 드라마를 썩 좋아하지는 않아서 1시간 내외의 컨텐츠는 회사에서 점심 먹으면서 보는 편이에요. 3일간 별 생각 없이 관성처럼 하루에 한 화씩 보고 나서 저는 '그렇게까지는 재밌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 드라마 내의 사건이 아니라 아지라파엘, 크롤리 두 캐릭터만 등장하는 연성만 탐라에 들어오는지 알 것 같다고도 생각했어요. 세계관이 방대하긴 한 것 같은데 너무 캐릭터 두 명의 매력이 드라마를 멱살잡고 끌고 가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4화쯤 보니까... 제가 이 드라마의 세계관에 대해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건 진지한 정통 판타지가 아니라 신성모독 코미디 쇼였던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머리를 비우고 그냥 생각없이 봤더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시의적절하게 시즌2를 다 보신 트친님이 비명을 지르시길래 얼른 시즌1을 끝내고 시즌2를 보고 싶다는 원동력이 생겨서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 모든 갈등이 너무 쉽게 해결되는 느낌이라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코미디물이면 그럴 수 있죠. 원작소설이 어떤 뉘앙스로 쓰였을지 대충 짐작이 가서 오히려 원작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3. 쉬핑이 잘 팔리긴 하나봐요 아지라파엘이랑 크롤리가 너무 비게퍼하는 아이돌마냥 알콩달콩해서 좀 웃겼어요. 어쨌든 여자들한테 팔아먹으면 뭐든 돈이 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나쁘다는 건 아닌데 너무 대놓고 해주니까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둘이 친구도 아니라고 해놓고 하여튼 웃겨요 정말... 2000년대 한드의 '웃겨 정말' '별꼴이야'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CP인 것 같네요. 시즌2에서는 더 찐해질것같던데 대체 뭘 할지 궁금합니다.
영화

no. 17  지옥만세

1. 영업 하지도 말고 받지도 맙시다 (피치 못한 경우 제외) 저는 영업을 당하면 어쩐지 그 작품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지는 청개구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남에게 무언가를 주선하거나 추천한다는 행위가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추천을 한다는 건 저의 취향을 상당히 드러내는 것인데, 상대에게 이상한 취향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이 늘 있거든요. 제가 받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남에게도 행하지 않겠다는 역지사지의 태도와, 애초에 추천하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마음이 합쳐져 저는 남에게 영업을 절대 하지 않는데요, 이런 철칙을 뚫고 제가 돈 써가며 남에게 예매해줘가면서 애걸복걸 봐달라고 영업한 작품이 딱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미성년이고, 하나는 바로 지옥만세입니다. 뭐가 그렇게까지 저의 심금을 울렸느냐고 설명하면 콕 집어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두 작품 다 여자 고등학생 두 명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지옥만세 예고편을 보고 저는 단번에 미성년을 떠올렸거든요. 사실상 주연의 구성을 제외하면 둘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긴 하지만, 그만큼 여성-미성년자 주연 두 명이 이끌어나가는 작품이 적었다는 반증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아닐수도.. 제가 식견이 짧았을 수도...) 2. 감독님이 말아주시는 진한 사이비의 맛 옛날에는 줄거리를 다 읽고 스포일러를 아주 자근자근 다 밟은 채로 영화를 보는 걸 좋아했는데, 요새는 예고편도 안 보고 냅다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스포일러는 영화의 감상을 망치는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따르게 되었나 싶기도 한데 그냥 귀찮은 것 같기도 해요. 어쨌든 대충 다섯줄짜리 시놉시스만 보고 영화관에 가다 보니 영화의 장르를 오해한 채 상영관에 들어가는 일이 최근에 꽤 잦았는데, 지옥만세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예고편만 보고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해버렸지 뭐예요? 포스터가 키치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저는 누아르 하트를 모으는 슈가슈가룬 세계관을 상상한 채 갔는데 막상 맞닥뜨린 것은 '사과받을 당사자는 아무래도 좋고 회개하면 신이 용서해주신다'고 굳게 믿는 사이비 종교인이었습니다. 영화 시놉시스를 보고 사이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찐-하고 리얼하게 말아주실 줄은 몰랐어서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네요. 저는 종교는 싫지만 사이비종교가 나오는 매체는 좋아하거든요! 사이비를 기대하고 간 건 아니었는데 전체적으로 종교광인 묘사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신기했어요. 일약 화목해보이지만 어쩐지 기묘한 분위기라든지, 만물을 기도로 해결한다든지... 채린 역 배우의 공허하게 맑은 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봉사하고 선한 행동을 보이면 지금까지 저지른 죄는 없는 것이 된다는 듯 행동하는 종교인 그 자체여서 보는 내내 얼마나 갑갑했는지 몰라요. 분명 착하게 굴고 있는데 묘하게 쎄한 느낌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어째서 신예 여성배우 중에는 이리도 인재가 많은 걸까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전도사 역 배우를 어떻게 그렇게 교회 청년부에 하나쯤 있을 법한 인상으로 골라왔는지 신기하더라고요. 동년배들에게는 별볼일없지만, 어른에 환상 있는 여자 고등학생들이라면 혹할 법한 그런 느낌이 딱 나와서 너무 신기했지 뭐예요. 쏭남이한테 요상하게 치근거리는 거 보고 저자식 저거 일 내겠는데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채린이랑 연애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걸로 추정되더라고요(웩). 개인적으로 이 캐릭터의 조형을 누가 한 건지, 어떤 자료조사와 자문이 들어간 건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런 그린 듯한 교회남이 등장할 수가... 3. 이 영화에서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은 성인 남성뿐이다 이 영화는 미성년자 여성의 자살 시도로 시작하지만, 정작 작중에서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은 성인 남성인 전도사뿐입니다. 제가 영업해서 이 영화를 본 친구는 '채린이 아빠도 사업 망해서 자살한 거 아니냐'고 말했는데,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영화 내에서 채린이가 말하는 건 '엄마'뿐이었던 것 같거든요. 이 추측이 정설이든 아니든간에, 미성년자 여성들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결국 가장 나약하고 비겁한 것은 미성년자도 여성도 아닌 성인남성이라는 것이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현실의 남성들이야말로 가장 연약하고 비겁한 존재들이잖아요. (아닐 수도 있지만 전 남자가 싫어요.) 현실의 폭력만큼이나 볼품없는 것이 현실의 남성인데, 이런 점을 콕 꼬집어 대놓고 보여주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실을 벗어나 낙원으로의 도피를 꿈꾸는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와 '지옥 만세'를 말하는 두 여성 청소년을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모릅니다... 처음부터 영화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영화의 결말에서 잘 지은 제목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서 너무나 좋았어요. 잘 지은 제목은 작품에 대한 최대의 칭찬이라는 말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4. 한국엔 멋진 여성 배우가 정말로 많다 미성년을 봤을 때도 느꼈지만, 세상엔 참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고 한국에는 멋진 여성 배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모든 아름다움은 결국 한 방향으로 귀결된다지만 저는 스크린에서 새로운 얼굴들을 볼 때마다 그 말에 반대하게 돼요.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미인이 많은데 무슨 소리냐?? (루키즘에서 벗어난 듯하지만 루키즘 그 자체인 말이군요... 그렇지만 저는 미인이 좋아요. 미안합니다.) 주연을 맡은 세 배우 모두 너무 좋았어요. 저는 화장한 것보다 덜 예쁘게 보이더라도 민낯이 주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서 그런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편 저는 주연들이 정말로 고등학생이거나 20대 초반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쏭남과 황구라 역을 맡으신 배우 두 분은 20대 후반이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날것의 고등학생의 얼굴과 말투를 할 수 있는 건가요??? 30대가 고등학생 역할을 맡는다는 기사도 종종 나오긴 하지만, 배우란 직업은 참 신비한 것 같습니다. 5. 박수칠 때 떠나지 마시라고요 최근 본 작품들 중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뒷이야기가 이토록 궁금해지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선우네 가정 이야기도 궁금하고, 채린이가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지도 궁금하고, 남은 효천선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어떻게 이런 세계를 만들어놓고 엔딩크레딧을 올려버릴 수 있나요? 영화감독들은 정말로 잔인하구나... 개인적으로는 정말 맘에 쏙 드는 작품을 만나면 그 감독의 전작들이 궁금해지는 편인데, 지옥만세가 그랬습니다. 영화가 정말 깔끔해요.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라는 고자극 소재를 쓰면서도 자칫 힘들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들은 구태여 상세히 재연하려 하지 않는 섬세함이 보여요. 감독님께 제가 보태드릴 건 많이 없지만 앞으로도 작품활동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이 리뷰를 보시는 분들도 이번 여름 지옥만세 한 번 보시면 어떨까요?
영화

no. 15  마에스트로

1. 내가 기대한 건 위플래시였구나 이 영화를 보는 날 이른 오후에 문득 메카물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메카물이 왜 좋은지는 도통 모르겠는 거예요. 그냥 심장이 시킨다고 말하기에는, 사실 전 '기계발사!' 같은 게 그렇게까지 재밌진 않거든요. 나는 이 장르의 무엇을 매력이라고 느끼는 걸까 생각하다가, 압도적인 기계문명 앞에서 인간이 극한으로 몰아붙여지는 상황이 오는 게 좋은 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쓰고 나니까 많이 다른 이야기인 것 같기는 하지만, 저는 이 영화에도 그런 것을 기대했던 것 같아요. 위플래시 같은 거 말이에요. 예고편을 안 본 건 제 잘못이 맞지만, 포스터를 이렇게 말아주면 어느 정도는 위플래시 부자ver.를 기대하게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이 포스터를 올리기 위해 파일 첨부 개수를 3개로 늘렸습니다. 아래의 두 포스터를 봐주세요. "전 아버지가 꿈꿨던 아들과는 거리가 멀어요" "네가 내 아들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쉬웠겠지" 당연히 이 대사들을 보면 휘몰아치는 부자갈등을 기대하게 되는 거 아니에요??? 사실 메인포스터나 예고편을 봤으면 이런 오해는 안 했을 텐데, 하필 제가 본 게 시놉시스랑, 위의 대사가 나오는 인물별 포스터뿐이더라고요. 아비정전 보고서 극장 때려부순 한국 관객들이 분노한 포인트를 약간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니 근데 아무리 포스터에 사기당했다고 할지언정 아비정전같은 웰메이드 영화를 보고 어떻게 화를 낼 수가) 어쨌든 제가 기대한 갈등이 휘몰아치는 패밀리이슈 영화와는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재밌게 봤습니다. 잠 많이 못 자고 저녁 못 먹고 이미 영화 한 편을 본 피곤한 상태에서 본 심야영화라서 보다 자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피곤함도 잊을 만큼 괜찮은 영화였어요. 2. 촉촉한 가족영화를 보았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원래 가정적인가요? 물론 서양 어떤 나라든 한국보다는 부모자식관계가 정다울 것 같기는 해요. 잠깐의 갈등을 아름답게 회복하는 그린 듯한 가족영화였는데, 이런 영화를 너무 간만에 봐서 조금 놀랐어요. 메인 포스터랑 예고편을 봤으면 예상 가능한 결말이었을텐데 말예요. 어쨌든 영화의 부자갈등이 생각보다 깊지 않아서, 제가 평소에 보는 컨텐츠들에 대해 반성하게 됐습니다. 저는 '케빈에 대하여' '보 이즈 어프레이드' 같은 가족애라곤 없는 지독한 가족영화 생각하면서 '저러다 죽이나?' '저러다 죽나?' '저러다 음모를 꾸미나?' 이런 생각밖에 안 했거든요. 세상에 그런 가족만 있는 건 아닌데 반성합니다. 사실 영화가 좀 얄팍한 감이 있긴 한데, 화목한 가정의 나이브한 갓반인들은 원래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냥저냥 적당한 것 같아요. 영화의 시놉시스가 '같은 길을 걷는 부자 간의 상호 질투'를 표방하고 있는 것치고는 딱히 질투의 분량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3. 회피형 모음집 사실 이 영화의 주요 갈등은 이해하기가 참 힘들어요. 아들에게 가야 했던 라 스칼라의 지휘자 오퍼가 아버지에게 잘못 간 것부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오퍼를 넣은 당사자가 아들을 불러 '아버지에게 잘 설명하라'고 말합니다. 사실 저는 이게 직장인으로서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전화 잘못 건 사람이 다시 걸어서 정정하면 안 되나요?? 그냥 사과하면 되잖아요. 왜 자기 실수를 남에게 떠넘기죠? 심지어 이 이후로는 아버지가 라 스칼라에 몇 번이고 전화를 거는데도 연결이 되지 않는 장면이 나와요. 프랑스에서는 비즈니스에서 이렇게까지 회피형이어도 되는 건가요?? 이야 유럽 살기 좋다. 어쨌든 남의 실수를 자기가 덮어쓰게 생긴 아들은 한껏 기대하고 있던 아버지에게 상처주기 싫어 말하는 것을 미루게 돼요. 그걸 두고 영화 내의 등장인물은 아들에게 너는 늘 겁낸다느니 해야 할 말을 회피한다느니 하는 말을 합니다. 아들이 회피하고 있는 것도 맞지만, 애초에 진짜 해야 할 일을 회피하고 있는 원흉이 따로 있어서 미묘했네요. 어쨌든 시간이 흘러 아버지도 이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고, 아들의 집에 찾아가 '너는 거장이었던 나와 수준 높은 관객들이 무섭냐'고 쏘아붙이고 돌아가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네 엄마는 예전에 바람을 피웠었다' 같은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게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나이먹고 중년의 아들한테 상처주고 싶어서 '너는 사실 내 친자식이 아니다'라고 비밀을 폭로하는 건가? 싶었는데 또 친아들은 맞대요. 그럼 이 얘기는 왜 나온거지? 싶었어요. 어쨌든 아버지가 아들을 쏘아붙이는 동안 아들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는데, 회피형 그 자체의 묘사였어요. 근데 아버지는 집에 가서 이 일방적인 소통을 '대화를 하고 왔다'고 표현하더라고요??? 회피형이 입 꾹 다물고 있는데 어떻게 대화가 되죠? 프랑스는 원래 회피형의 나라인 건가요? 이상하네... 4.이것이 프랑스 영화...? 약간 수위 있고 이상한 얘기를 하면 꼭 '프랑스 영화같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유한 게 미안할 정도로 멀쩡한 영화인 것 같기도 하고, 감정선을 생각하면 좀 '프랑스 영화'인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묘해요. 초반에 '이거 프랑스 영화다'라고 느낀 지점은 연인 간의 성관계가 아주 담백하게 나타나는 장면이었어요. 딱히 섹슈얼한 묘사가 있지는 않았고 키스하다가 다음날 아침으로 넘어가서 성관계를 했다는 암시만 주는 정도였는데, 성관계를 비일상적인 포르노가 아니라 그냥 지극히 평범한 일상처럼 끼워넣었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관객한테 섹스어필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연인 간에 할 일 했다는 느낌? 그리고 서양권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하던데, 이 영화에서 그런 사례를 보게 되어 신기했습니다. 주인공의 부모님이 50년째 동거만 한 설정이더라고요? 백발 노인이 되어서야 프로포즈를 하지 뭐예요. 이후에 나올 아버지의 실망과 대조시키기 위해 영화적으로 조금 과장해 넣은 설정인지, 원래 흔한 일인지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아들은 이혼한 전처와 친밀하게 지내며 비즈니스를 함께하는데... 이게 일반적인 사회의 모습이면 참 쿨하고 좋은 것 같아요. 어째 또 후기 쓰다보니까 좋다고 해놓고 '개연성이 이게 뭐냐'고 욕하게 된 느낌이네요... 그렇지만 재밌었습니다. 작위적일지언정 행복한 엔딩은 좋은 거니까요~
영화

no. 14  저수지의 개들

1. 어쩌다보니 세계의 느와르에 손을 대다 제가 뭐 딱히 느와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홍콩영화를 좋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고전 느와르도 보게 되고 뭐 그런 상황들이 종종 있곤 합니다. 그래서 홍콩 느와르 작품은 몇 편 봤지만, 서양에서 제작한 느와르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탐라에서 모님이 왓챠파티 모집하시길래 잘까 말까 고민하다 보게 됐는데, 좋은 선택이었네요! 보면서 알탕의 개저들을 마구 비웃긴 했지만 영화적으로는 너무 잘 만든 영화였어요. 영화 공부를 따로 한 적도 없는데 이게 데뷔작이라니 역시 난 놈은 따로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네요. 2. 연출이 멋지다! 영화를 보면서 종종 제작비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맨 프롬 어스'를 볼 때는 제작비가 별로 안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더 문'을 볼 때는 이거 아무리 봐도 돈을 잔뜩 발랐는데 지구찜통화의 시대에 자원을 이런 식으로 낭비해도 되나 싶었죠. 당연히 모든 영화를 볼 때 제작비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사례들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제작비 생각이 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럼 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저수지의 개들'은 어떠냐면요, 영화 잘 보다 중간에 문득 '제작비 좀 아꼈겠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요. 장면이 지나간 후에 생각해보면 머리를 잘 써서 돈 안 쓰고 개연성을 잘 챙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마 전 '다섯 번째 흉추'를 보고서 연출이 세련되지 못함을 아쉬워한 적이 있는데요, '저수지의 개들' 또한 별도의 장면 삽입 없이 인물의 대사로 회상 장면을 대신하는 장면이 똑같이 들어갔더라고요. 그런데 저수지의 개들에서는 그 장면이 불필요하다거나, 다르게 연출된 장면으로 대체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역시 장인에게는 도구도 방법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냥 잘 만드는 사람과 잘 못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이군요... 3. 이것이 개저느와르다 영화의 만듦새가 좋은 거랑은 별개로 등장인물들은 하나하나 너무나 비장한 개저들이라서 웃기더라고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폭력이라는 소재를 늘 '죄값을 치러야 하는 것'으로 다룬다는 해설을 들었는데, 그런 성향을 생각해보면 등장인물들이 우습게 그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도 같아요. 애초에 초반에 팁을 내니 마니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멋지게 그릴 생각도 없어 보이긴 하지만요. 보면서 느낀 것은... 역시 남자는 남자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 미스터 오렌지의 사연과 미스터 화이트의 동료애도 눈물겹지만, 미스터 블론드에 대한 나이스 가이 에디의 사랑이 너무나 절절했어요. 애칭도 있고 거의 짝남이던데요... (근데 사실 미스터 블론드가 끝내주게 핫하긴 했어요) 줄거리는 그냥 멋진척하는 남자들의 똥폼쇼 그 자체였지만 연출적으로 정말 멋진 영화였습니다. 비슷하게 서술보다는 대사로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경향이 있는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이 생각나기도 했네요!
영화

no. 13  다섯 번째 흉추

1. 젯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죄 허구한날 리뷰 쓸때마다 '저는 ○○영화 별로입니다' 이런 말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독립영화도 별로입니다. 변명하자면 저는 CJ 배급 한국영화도 별로고 가족영화도 별로고 로맨스영화도 별로고 좀비영화도 별로고 아포칼립스도 별로고 화면이 못생긴 영화도 별로고 더러운 거 나오는 영화도 별로고 죄 없는 강아지 죽이는 영화는 싫고 하여튼 편식이 심해요. 여튼 이렇게 입맛 까다롭고 취향에 안 맞으면 시도도 안 하는 흥선대원군인 제가 왜 뜬금없이 시놉시스가 취향이지도 않은 독립영화를 보게 되었느냐... 그것은 젯밥에 관심이 많아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품샵인 네이키드런치에서 특전 키링 제작에 참여했더라고요. 영화엔 큰 관심 없지만 키링은 갖고 싶었어요. 찾아보면 키링만 따로 판매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키링 하나 값이랑 비등비등한 돈으로 키링도 받고 영화도 보면 좋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왕이면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는데, 독립영화답게 도저히 볼 수 있는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관이 없더라고요. 반차 내고 보러 갈 정도로 원하는 건 아니라 포기했었는데, 태풍으로 인해 근무시간 조정이 되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타이밍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보고 난 지금은 이게 좋은 일이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 영화가 2023년에 본 영화 중 가장 취향이 아닐 걸 알았다면 안 봤을까요...? 올해 본 영화중에는 싸이코 남자친구가 단연 최악이었어서 종종 언급하곤 하는데, 둘 중 무엇이 영화냐고 물으면 당연히 다섯 번째 흉추를 고르겠지만... 뭘 한 번 더 보겠냐고 물으면 싸이코 남자친구를 보겠어요. 이하 리뷰는 주관적인 불호 의견을 담아 썼습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도 힘겨운 연약한 트친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기는 힘드실 것 같습니다... 2. 나는 루키즘의 노예 저는 루키즘의 노예입니다. 적어도 인간이 자본을 들여 생산해낸 건 예쁘고 향기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구찜통화의 시대에 환경오염시켜가며 구린 걸 굳이 만들어내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못생겼어요. 처음에는 미장센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더럽거나 기괴하거나 더러운 동시에 기괴한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서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더러운 게 싫은데 영화가 전반적으로 위생적인 측면에서 너무 더러워요. 영화의 메인 주제 자체가 곰팡이라 이미 더러운데 그 더러움이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가 도저히 납득이 안 되서 그냥 계속 더럽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이 영화는 '매트리스에 핀 곰팡이가 생명체가 되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인데, 사실 곰팡이 핀 매트리스만 진작 폐기했어도 영화 진행이 안 되는 수준이거든요? 아무리 판타지적 상상력에서 시작된 영화여도 그렇지, 이야기가 좀 상식적인 수준에서 진행이 돼야 '이건 이런 세계관이구나' 하고 받아들일 거 아니에요. '이게 의자? 정말 대단해!' 같은 대사가 나오는 이세계물이랑 다를 게 뭔가요???? 아니 매트리스에 곰팡이가 피었는데, 심지어 이불 아래에서 육안으로 보이는데 왜 그 위에 이불을 깔고 그대로 자냐고요. 이게 상식적인 전개냐고요. 매트리스에 곰팡이가 피었으면 좀 갖다 버려; 진짜 더러워서 못살겠네... 영화 내내 곰팡이 핀 매트리스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이 자주 길게 등장해서 보기 괴로웠어요. 더러워요... 더럽다고요... 더러운 거 얘기 실컷 했으니까 이제 기괴한 거 얘기 해야겠네요. 더러운 건 싫지만 저는 기괴한 건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 근데 아닌 것 같아요. 이 영화는 크리처물의 면모도 갖추고 있어요. 촉수 비슷한 게 나옵니다. 근데 그 촉수가 사람을 해치고 신체부위를 먹고 매트리스 밑을 기어다니는 크리처물스러운 장면이 너무 길게 많이 나와요. 마법소녀 변신씬도 최초로 변신할 때나 풀버전으로 보여주지 그 다음부터는 간소화시켜서 보여주는 게 불문율이거늘 딱히 아름다운 장면도 아닌 걸 꼭 1분씩 꽉꽉 채워서 넣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러닝타임이 1시간을 약간 넘어가던데, 1시간을 넘어보려는 의도였을까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레포트 글자수 채우려고 긴 단어와 접속부사와 공백과 문장부호를 쓸데없이 많이 넣는 우리네 모습이 떠올라요. 제가 말한 장면들 좀 줄였으면 러닝타임이 1시간 미만이었을 것 같긴 하거든요. 여튼 곰팡이랑 촉수 클로즈업해서 1분동안 보고싶으면 혼자 보시라고요 관객을 영화관에 가둬놓고 보게 하지 말고;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화면 보기가 힘들어져서 마지막 20분정도는 그냥 핸드폰 보면서 흐린 눈으로 봤네요. (상영관에 저 포함 두명밖에 없었고 그 한 명은 저보다 앞에 계셨어요)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건 아는데 도저히 이런 못생긴 화면을 보고 싶지가 않아서............ 한편 이 영화는 곰팡이에서 시작해서 버섯으로 끝나는데, 버섯이 너무 마트 버섯이라 몰입도가 확 깨졌어요. 갑자기 뭔 억지감동 신파 결말이 나는데 거기다 새송이 팽이버섯 흰목이 검은목이 동충하초 노루궁뎅이의 향연이 펼쳐지더라고요?? 제가 마트에 온 줄 알았지 뭐예요. CG를 쓸 수 없었겠죠. 그랬겠죠... 하지만... 꼭 버섯이어야만 했나 싶네요. 포스터도 주길래 받아왔는데 이 버섯 화면이라 좀 짜증나요. 아 뭔 버섯이야 진짜 장난하나 3. 연애와 섹스를 메워야 연애란 대체 뭘까요? 대관절 뭐길래 독립영화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도통 놔주질 않는 걸까요? 딱히 건강해 보이지 않는 연애와 독립영화의 뜬구름 잡는 문어체 대사가 합쳐지니 역할놀이에 대단한 의미부여 좀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드네요. 이 영화에 나오는 연인이 세 쌍인데 셋 다 뭐 딱히 아름답지도 않고 애틋해보이지도 않고 대체 뭘 주제로 싸우는지도 모르겠고 현실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공허한 대사만 내뱉고 있으니 '뭐 어쩌라고' 싶고... 제목은 저렇게 붙여놓기는 했지만 딱히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다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저도 뭔 와닿지도 않는 그뭔씹 독립영화 대사 같은 걸 생산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4. 비주류란... 이 영화를 보면서 비주류 취향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비주류에 속해 있든 아니든 '나는 비주류다'라고 주장하지 않나요? 이 영화에서는 '내가 이렇게까지 비주류다'라는 과시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이런 거 좋아하는 자신을 굉장히 사랑하시는 듯... (개인적 의견입니다) 늘 말하지만 하고 싶은 걸 극단적으로 추구한 작품이 좋은데 이 영화는 이것저것 잡아보려다 길을 잃은 느낌이에요. 기괴한 걸 하고 싶었으면 아주 그 쪽으로 끝을 보는 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렇게 해도 제 취향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자기 취향을 밀어붙이는 뚝심에 존경을 보낼 수는 있었을 것 같거든요. 지금의 감상은 솔직히 그냥... '나 이상하지? 이상한 나 예술적이지?' 이런 느낌... 사실 저도 제 취향이 꽤 비주류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상영관을 나오면서 저는 참 마일드하고 일반적인 취향을 가진 머글 바닐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현을 뭐라고 해야 적절한지 모르겠는데, 요즘 대중에게 유행하는 컨텐츠를 보면 오타쿠적 취향이 왜 이상한 것 취급을 받는지 의아해요. 대중성 있는 컨텐츠가 더 폭력적이고 기괴하지 않나요? 이 작품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제에서는 상을 꽤 많이 받았더라고요.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계도 <언니의 폐경>에 상을 주는 알탕 문학계와 사정이 비슷한 걸까요? 쓰레기 영화까지는 아니고, 그냥 지독하게 제 취향이 아닌(그리고 이게 취향인 사람은 소수일 듯한) 영화입니다. 저한테 욕먹을 이유까지는 없는 영화인 것 같지만 제가 제 개인 홈페이지에 불호평 좀 쓸 수 있는 거잖아요. 키링 때문에 본 거지 진짜 제 취향 아니에요. 뭘 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 만드는 남자 감독에 편견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물론 이 영화가 좋았다는 사람과도 말 섞기 싫어요. 하지만 아리애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좋아하는 나도 누군가에겐 이런 존재겠죠...
영화

no. 12  달짝지근해: 7510

1.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요새 영화를 자주 보다 보니 어쩐지 이 영화 포스터를 자주 마주치게 되더라고요. 저는 한국영화 별로 안 좋아하고요, 특히 '잘 팔리는 중년 남배우'를 기용한 한국영화에는 특히 편견이 있어요. 하정우 나오는 CJ 배급 한국영화는 안 봐도 대충 영화의 톤이 느껴지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에도 편견을 가졌습니다. 유해진을 쓰는데 영화 제목이 달짝지근'해'라니... '한층 유해진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짤 같은 느낌이라서 사실은 현실 유해진의 캐릭터에 기댄 리얼리티 형식인 줄 알았어요. 영화라고도 생각 안 했습니다. 진짜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아니 근데 포스터를 보시라고요. 영화 설명은 하나도 없고 '유해진 첫 코믹로맨스 도전' 이것만 덜렁 써놓고 영화관이랑 영화관 사이트에 저 포스터만 도배해놨다고요. 누가 봐도 유명한 남배우 하나 데려다 그 이미지만 쏙쏙 빼먹으려는 도전이잖아요?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잖아요? 여튼 그래서... 사실 시사회 당첨되지 않았다면 10000원 할인쿠폰 받아도 볼 생각 안 했을텐데, 그랬으면 인생 손해볼 뻔했습니다. 고마워요 씨네큐.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해 개봉 영화 중에서는 킬링로맨스랑 견줄만한 웰메이드 코미디네요. 재밌었어요! 2. 로맨스코미디가 아니고 코믹로맨스 킬링로맨스도 달짝지근해도 상영관에서 웃음이 꽤 자주 터진 영화였는데, 빈도수는 달짝지근해가 더 높은 것 같아요. 킬링로맨스는 개그 코드가 안 맞아서 극불호였던 사람도 꽤 많은 것 같은데, 코미디의 대중성은 달짝지근해 쪽이 훨씬 좋다고 느꼈어요. 킬로가 웃기면서도 '이 인간 뭐 먹고 이런 대본 썼지'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든다면 달짝지근해는 그냥 깔끔하게 웃겼거든요. 사실 천박한 밈이 뒤덮은 현대에 대중성 있는 코미디를 보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가 여간 어려워졌는데요, 웃기려고 무리수를 두지 않는 영화라 좋았습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표현보다는 실없는 말장난 aka 아재개그가 중점인 영화예요. 그리고 인물들이 굉장히 현실적인데, 현실의 얼렁뚱땅 유쾌한 부분을 잘 뽑아 가져온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면, 회사에서의 회의 장면이 나오는데 진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얼렁뚱땅 상황이라 깔깔 웃었어요. 사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세계는 현실적이지 못할 때가 너무 많아서... 특히나 회사를 다니고 나서는 근무지 배경의 모든 매체를 '저게말이되냐' 생각하며 흐린눈으로 보게 됐거든요? 근데 달짝지근해에서는 진짜 얼레벌레 돌아가는 직장인의 하루가 보여서 '그래 이게 회사지' 생각하며 즐겁게 봤습니다. 심지어 눈에 띄게 밈을 사용한 부분도 딱히 안 보였어요. 솔직히 요새 영화들은 웃기려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밈 갖다쓴 대본이 너무너무 많아서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닌데, 코미디를 지향하면서도 밈이 없어서 놀라웠네요. 코미디 비중이 꽤 높습니다. 웃겨요. 명사로 굳어진 '로맨스코미디'가 아니라 '코믹로맨스'로 표기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3. 웬걸? 볼만해. 아니? 재밌어. 놀랍게도 이 영화는 제법 PC함에 가깝습니다. PC함을 노리고 그렇게 만든 건 아니겠고 당연히 완벽하지도 않겠지만 트위터 하는 여성으로서(ㅋㅋㅋㅋㅋ) 거슬리는 부분 없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아~~ 이런 포인트로 좋은 장면이 꽤 많았는데 개봉 전 영화라 상세하게 쓰기가 좀 그러네요. 영화가 별로면 그냥 쓸텐데, 추천하고 싶은 영화라서 혹시나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의 즐거움을 뺏기 싫어요.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써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여성 당사자로서 남성이 여성을 무력으로 위협하는 상황을 보는 게 좋을 수가 없잖아요. 이 영화에서는 '참교육'적인 장면은 안 나옵니다. 게으른 창작자들이 으레 써먹는 '힘의 논리' 같은 게 거의 없어요. 세계 자체가 현실보다 안전하고 친절한 느낌이었는데 그게 좋았네요. 사실 여성 캐릭터가 좀 납작하게 쓰인다는 기분이 드는 장면이 없진 않은데 남성 캐릭터도 같이 납작해서 무시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창작물 속 세계가 너무 편리하게 돌아가면 매력이 뚝 떨어지는 영화가 더 많지만 이 영화는 톤 자체가 가벼워서 그런가 괜찮았어요. 오~ 이 한국은 그런 세계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느낌? 4. 배우 기용이 기가 막힌다 조연으로 정우성이랑 임시완이 나오더라고요? 분량은 많지 않은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티피컬한 미남 배우들을 이렇게 쓴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 다 쓰임이 신선해서 좋았습니다.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 줘요. 한선화 씨도 너무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전반적으로 조연 여성 캐릭터들이 꽤 매력적인 느낌이네요. 캐릭터가 납작한가 싶은데 조형의 게으름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사람' 그 자체인 것 같아서 너무 귀엽더라고요. 위에서 말했듯이 세계관 자체가 현실보다 가벼운 느낌이라 캐릭터가 단순한 게 위화감 없는 느낌이기도 해요. 역할 자체가 술꾼도시여자들의 느낌이 좀 있기는 한 듯? 그리고 주인공의 딸인 진주가 꽤 재밌는 캐릭터였어요. 이 영화의 최강자일지도? 좋은 지점이 좀 있었는데 말하면 너무 스포일러라 못 쓰겠어요. 근데 진짜 좋음. 하 그리고 저 원래 좀 나이먹은 양애취 하남자 좋아하는데 차인표 씨가 분한 캐릭터 꽤 취향이었어서 짜증나요...... 5. 짱 재밋음! 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고싶은데 개봉을 안 해서~~~ 여튼 진짜 재밌게 봤어요. 해석할 필요 없는 영화 진짜 간만에 보는 것 같은데 이 감독 영화 잘 만드네요. 이런 영화는 미장센이 좀 별로인 경우가 있는데 화면도 꽤 예뻤고요. 전작이 궁금해지는 감독입니다. 사실 저는 제가 재밌게 본 영화도 추천 잘 안 하는데 (당연함... 보이즈어프레이드 같은 영화만 좋아함...) 이건 진짜 가족이랑 봐도 무방한 영화예요. 영화관 티켓 값이 너무 올라서 영화관 가서 보시라고까지는 못 하겠지만 기왕 영화관 가실 일 있으면 추천합니다.
영화

no. 11  더 문

1. 나는 오빠가 영화관 앞에 커피차 하나 대놨어야 했다고 생각해 저는 CJ 배급 한국영화를 안좋아합니다. 좋았던 적도 없는 것 같고, 기대도 안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문을 본 이유는 도경수씨가 저의 One&Only OPPA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CGV 10000원 할인쿠폰을 잡았거든요. 14000원 주고는 안 봤을듯) 뭐 그리 대단히 팬질을 열렬히 한 적은 없지만, 4000원정도면 OPPA의 신작 영화를 한번쯤 볼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뭔 동태눈깔 빡빡이로 아이돌에 별 의욕 없어보였을 때는 속이 썩어문드러졌지만 군대 다녀와서 마음을 고쳐먹은 것 같더라고요. 오빠가 정신차리고 맑은 눈으로 아이돌 해주겠다면 영화 봐서 응원해드려야지 어쩌겠습니까. (제 4000원이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만은 마음이 중요한거죠.) 그치만 저는 사실 도경수씨 출연 영화 중 스윙키즈밖에 안 봤어요. 왜냐면 저는 드라마랑 CJ 배급 한국영화 안좋아하고 그는 제가 안좋아하는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에만 주구장창 나왔으니까요... 스윙키즈도 비행기 안에서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고 봤을 뿐이에요. 그만큼 도경수씨와 저는 영화 취향이 안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도 딱히 기대 안 하고 그냥 얼굴이나 보겠다는 마음으로 보러갔는데 진짜 취향 아니었어요. 저는 도경수씨가 검은 상자 안에 갇혀 4000원과 2시간 가량을 이 영화에 투자한 저를 위해 커피차 하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커피차냐고요? 영화 보러 가는 길에 모 인기 아이돌의 역조공 커피차를 봤거든요... 2. 웅앵웅 초키포키 한국영화가 음향 별로인 걸로 참 유명하지만 이렇게까지 대사 안 들리는 영화도 참 오랜만이네요. 더 문 전에 마지막으로 본 한국영화가 아마 킬링 로맨스같은데 킬링 로맨스는 그래도 어지간한 대사는 다 들렸거든요? 그 전이 헤어질결심일텐데 헤결은 훌륭했고요. 그런데 더 문은 하... 진짜 웅앵웅 초키포키 그 자체입니다. 우주 배경이라 안 그래도 기본적으로 환경음이 많은데 딕션도 구려~ 배경음악이랑 효과음이 사람 목소리 다 잡아먹어~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어요. 영화 보는 내내 대사가 너무 안 들려서 내용이고 뭐고 집중이 잘 안 되더라고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밀수가 자막이 함께 나온다는 보도를 봤는데, 제가 밀수를 아직 보진 않았지만 진짜 자막이 필요한 영화는 더 문입니다. 오프닝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해서 만들었던데, 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처음부터 대사가 너무 안 들려서 '다큐멘터리처럼 만들 거면 자막도 좀 넣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3. 그냥 뭐 한국적인 영화 한국적임이란 무엇이냐... 이 영화에서는 '웅앵웅 초키포키' '안전불감증' '알탕' '작위적 신파' '최악의 여성 캐릭터 활용' 정도의 특징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더 있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뭐 열심히 곱씹고 싶지 않아요. 딱히 내일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영화라 자기 전에 빨리 리뷰 쓰고 끝내려고요. 하... 일단 영화가 너무 작위적이에요. 동료 대원들 죽는 이유? 나가지 말랬는데 굳~이 밖에 나가있다가 죽음. 한국의 안전불감증 이제 정말 고쳐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건 안전불감증의 나라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게으른 플롯이라고요. 게다가 여기에 신파를 얹어서, 밖에 있던 동료 대원들은 안에 있는 사람한테 죽어라 꼽주더니 죽기 전에 갑자기 '명령이다... 살아라.' 이러고 자빠짐. 산소 15초 분량 남았다는데 2분은 말한것같음. 유성우가 빗발치는데 마법같이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만 떨어짐. 재미도 감동도 없는데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 화면에 자꾸 띄움. 절차와 공권력 개나 준 영화적 허용. 뭐 얘기하자면 많은데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대사도 개구리고요. 제가 좀 지성을 갖추고 문장을 만드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리뷰란에는 최대한 정제된 문장을 쓰려고 하는데요.... 아 몰라 리뷰 대충 쓸래요 그냥 한국영화가 정말 별로다 나는 4. 여성 캐릭터 활용 이게 최선입니까 진짜 욕을 빼고 이 단락을 쓸 수가 없다. 이 영화는 PC주의가 영화를 망친다고 주장하는 뭇 남성들에게 화답하듯 여성 캐릭터 활용이 정말 최악입니다. 김희애를 캐스팅해놓고 이게 최선인가 싶었어요. 일단 이 알탕영화에서 비중있게 등장하는 여성은 단 두 명입니다. 그런데 한 명은 나사에서 일할 만큼 유능하지만 전남편 부탁 듣고 정에 이끌려 냅다 보안 유출을 해버려서 해고당하고요, 나머지 한 명은 그냥 젊고 예쁘고 활기찬 여자 역할일 뿐인 것 같아요. 전자는 각본가가 직장생활이라는 걸 해보긴 한 건가? 오피스물만 보고 산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행동 양식이 너무 얄팍해서 놀랐고요, 후자는.... 그 캐릭터가 젊은 여성이어야 할 이유를 전혀 못 찾았습니다. 심지어 영화의 톤에 안 맞게 혼자서 너무 발랄하고 시끄러워요. 제가 생각하기엔 이 영화에서 제일 구린 캐릭터예요. 캐릭터 조형도 납작하고, 뜬금없이 공감능력 결여된 것 같은 대사를 하지 않나...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캐릭터를 굳이 끼워넣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없어도 영화 진행에 전혀 문제 없는 캐릭터거든요. 그냥 중년남성과 젊은여성 페어를 어떻게든 넣고싶어서 억지로 만들어낸 캐릭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별로였어요. 나름 주인공 파티한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그럼 뭐 합니까. 남성 캐릭터들이 들을 생각도 안 하는데... 여자 말이라면 일단 중요하지 않은 걸로 치부하는 한국남성을 표현했다면 리얼리즘은 인정할게요. 5. 나는 한국영화가 정말 별로다 대충 훑어보고 왔는데 평론가 평도 그닥이네요. '예측 가능하게 반복되는 갈등-해결 무한루프'라는 평이 있던데,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갈등-해결-갈등-해결-갈등-해결..... 하다 영화가 끝나요. 갈등이 너무 얄팍해서 그냥 갑갑하고 짜증나고... 우주 배경 재난영화면 당연히 우주에서 온갖 사건을 겪다가 지구로 돌아오겠죠. 근데 그 과정이 너무 뻔하고 재미없고 신파고... 아 몰라 이 영화에 대해 뭐 생각을 정리하고 어쩌고 하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리뷰는 여기서 끝낼게요 막 보고 나왔을 때는 이 정도로 짜증나지는 않았는데 진짜 취향 아니었어서 리뷰 쓰다보니까 열받네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한국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기어들어가서.... 밀수나 볼걸 여튼 한국 신파 좋아하시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르고요 저는 극불호
영화

no. 10  바비

1. 한국의 기사증후군 어쩌면 좋은가 바비를 봤습니다. 개봉 전에 바비월드 세트장을 보고 흥미가 생기긴 했지만, 저는 관객석에 사람 5명 이상 앉아있을 것 같은 영화는 영 구미가 안 당기거든요. 바비를 비롯한 장난감에도 영화 보러 갈 만큼 큰 관심은 없어요. 포스터가 접힌 채로 영화관에 걸리는 일만 없었어도 안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쯤되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아닐까요? 하도 난리가 났길래 내심 기대하고 갔는데... 아니 켄도 챙겨주잖아! 이 정도면 이퀄리즘 아냐?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켄을 레몬과 함께 모래사장에 파묻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마당에 무슨... 2.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바비 리뷰 첫 번째 단락을 써놓고 바비 리뷰를 계속 미뤄왔습니다. 좋은 것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밀수를 보고 온 지금 더 이상 미루면 영원히 안 쓰게 될 것 같다는 직감을 느꼈습니다. 사실 본 직후에는 '너무 인류애 넘치는 이퀄리즘 영화 아냐?' 싶었는데 그 사이 좋은 리뷰를 몇 개 보고 생각이 바뀌었으므로 좀 더 나은 감상평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3. 바비 걸 인 더 바비 월드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여자아이라면 이 영화의 도입부를 사랑하지 않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저만 다 크고도 구체관절인형이나 실바니안 패밀리 같은 거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요. 게다가 이 아름다운 바비 월드 세트를 보시라고요... 그레타 거윅이 세트장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백 번 이해되더라고요. 빈 잔으로 음료를 마시는 시늉을 하는 식으로, 인형놀이의 비현실성이 드러나는 장면들도 너무 좋았어요. 그치만 역시 최고는 이상한 바비 아닐까요? '왠지 모르게 늘 다리를 찢고 있음' 같은 설정이 들어 있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이 영화가 맘에 들지 않았던 뭇 남성들은 바비가 한국에서 잘 안 된 이유를 '한국은 바비 문화권이 아니라서'라고들 하던데(참나!), 꼭 바비가 아니어도 비슷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면 분명 공감할 만한 심상이었어요.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바비인형을 가지고 뭐 얼마나 심오한 영화를 만들겠나, 해봐야 애들 보는 디즈니 만화영화같은 거 나오겠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엄마가 될 연습이나 하라는 듯 아기 인형만 가지고 놀 수 있는 여자 어린이들을 비춰주더라고요. 시작부터 이거 진짜 페미니즘 영화구나! 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사실 '바비'라는 단어는 여자들이 결코 닿을 수 없지만 닿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회적 이상향이잖아요. 아쿠아의 바비걸에서는 '네 맘대로 옷을 벗기고 원하는 대로 해도 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현실의 여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개념은 아닌데, 매일매일 행복한 바비 월드의 예쁘고 날씬한 티피컬 바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이런 함의를 콕 집어준 게 좋았네요. 현실 세계로 가는 부분부터는 사실 약간 전형적이라고 느끼기는 했는데요, 그래도 여자 얘기라면 좋은데 어떡하나요! 좋은 것만 가득하던 바비 월드에서 가부장제와 성희롱이 판치는 현실 세계로 떨어지고, 바비 월드가 켄부장제에 물드는 모습을 보는 것이 현실 세계의 여성으로서 좋지는 않았지만, 충격요법으로는 최고였다고 생각해요. 이걸 보고도 여남이 평등하며 성차별같은 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럼 죽는 게 나을텐데... 4. 켄 얘기도 하긴 해야겠지 라이언 고슬링의 비중이 생각보다 큰데, 자아를 가지고 행동하는 모든 부분이 열받아서 때리고 싶었어요. 라이언 고슬링은 어디서 이런 티피컬-하남자를 연구해온 걸까요? 여자한테 관심받고 싶어서 찌질거리는 것도 가부장제에 심취해서 자기가 뭐 된 줄 아는 것도 하나같이 열받고 짜증나요. 얄밉고 우습게 조형된 캐릭터인데 진정으로 이 캐릭터에 감명받아 '영화 이름을 켄으로 바꿔도 될 것 같다'고 말하는 그 성별들은 대체 뭘까요... 죽어... 켄들이 싸우는 장면에선 찰리 XCX의 Boys 뮤비가 생각났어요. 그 장면이나 이 뮤비나 여성들이 자주 입는 사탕껍질같은 옷과 작위적 섹스어필을 남자들에게 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별 거 아니긴 한데, 백인남성 라이언 고슬링을 제치고 동양인 남성인 시무 리우가 비교적 알파메일로 등장한 게 재밌더라고요. PC함을 위한 걸수도 있지만요? 어쨌든 동양인 입장에서는 기분이 꽤 괜찮을지도요. 5. 고작 바비로 기 죽을 거면 그냥 죽는 걸 추천드림 영화는 좋았고 재미있었는데 리뷰를 지금까지 미뤄온 이유는 이 영화에 대해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였습니다. 갑자기 바비가 인간이 된다니, 만물이 인간이 되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인간중심적인 엔딩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좋은 리뷰를 봐서 영화의 제작의도에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어요. 리뷰를 쓸 힘이 생겼습니다. 구구절절 좋은 리뷰지만 그 말을 그대로 옮겨봐야 의미는 없는 것 같고, 덧글로 따로 링크를 붙여둘게요. (하이퍼링크를 본문에 넣으면 게시글 목록이 깨지더라고요) 사실 바비는 페미니즘, 가부장제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할 뿐 상당히 온건한 영화잖아요. 그리고 저는 바비 월드의 켄들이 2등시민 취급 당하는 것도 현실 세계의 여자들에 비하면 제법 온건한 대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것도 못 견뎌서 바비가 그토록 미운 남자들은 대체 뭘까요? 그냥 죽었으면 좋겠어요. 여자를 사랑하라고 만든 영화지 남자를 싫어하라고 만든 영화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전 원래 남자가 싫어서요… 그리고 그들에겐 잠깐의 블랙코미디지만 여자들한텐 아마도 평생 이어질 현실이잖아요. 현실의 남성들을 겪어온 여성들이 바비의 켄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과, 남성들이 바비를 보고 2등시민 취급 당해 불쾌한 것은 달리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몰라 그냥 죽어 한편 이 리뷰를 쓰기 전날 밀수를 보고 왔는데, 확실히 바비는 밀수 이후에 보면 조금은 싱겁게 느껴지는 영화가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켄들이 저렇게 재수없게 구는데, 아무리 현실 세계의 여성을 상징한다고 해도 픽션에서조차 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줘야 한다니 너무나 다정한 영화예요… 지위는 비슷할지언정 여자들은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어….
영화

no. 9  C'est La Vie

1. 저는 보이즈어프레이드에 미친 인간입니다 트친분이 제가 보의 장례식을 주최하는 꿈을 꾸셨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어도 그 분 타임라인에서는 제가 압도적 보어프1짱입니다. 근데 저 나름 트위터에서는 얘기하고 싶은 거 많이 참았거든요...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좋아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리애스터가 저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요? 여튼.. 저는 보어프 정보를 찾아 해외 포럼을 떠돌던 중 영화에 나오는 Birthday boy stab man의 원형이 아리애스터의 단편영화 C'est La Vie에 등장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워듣게 됩니다. 배우도 같아요! 그러면 봐야지... 까지 쓰고 리뷰를 미뤄왔습니다. 진짜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어서요. 그래도 써야겠죠? ㅠㅠ 해외 단편영화라 해석글 찾기 힘든 게 슬프네요. 2. 이거 진짜 뭐 하는 영화야 이전에 아리애스터의 다른 단편영화인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를 리뷰하면서 완성도가 높다는 말을 했었거든요? 전하고자 하는 바도 확실한 편이고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존슨즈 가족의 기묘한 일보다 C'est La vie(이하 세라비)가 이전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어쨌든 아리애스터도 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사람이니까 과제를 제출해야 했을 거고요. 그런데 세상에. 존슨즈 가족의 기묘한 일은 2011년작이고, 세라비는 2016년작이지 않겠어요? 이 영화는 제작자가 미숙해서가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만든 거구나 싶어 아득해졌습니다. 아리애스터는 2011년에도 2023년에도 변함없이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인데 그 중간인 2016년에 만든 영화가 길을 잃었을리가 없잖아요! 영화는 일단... 멋있어요. 음악적으로 스타일리시한 느낌입니다. 저는 아리애스터 영화 중에서는 특히 유전의 사운드트랙을 좋아해요. 아리애스터 장편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다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요, Ost가 아니더라도 선곡을 보면 아리애스터의 선곡 센스가 좋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영화에서 보이는 것만큼 들리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리애스터는 공포영화를 주로 찍는 감독이라서 더 음향을 중요시할 수도 있겠네요. 어떤 장르가 안 그렇겠냐만은, 공포영화에서는 특히나 분위기 조성에 음향이 중요하잖아요? 쓰다 보니까 또 삼천포로 갔는데, 세라비는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이 랩을 하듯 빠르게 대사를 읊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비트가 깔려요. 그래서 영화가 아니라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영화의 속도감이 인상적이었어요. 음악에도 관심이 있는 아리애스터가 하고 싶은 말 많은 김에 이런 형식을 차용해본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네요. 3.그래도 일단 말을 해보자면요 영화 내용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 하나도 이해를 못했어요. 아리애스터가 미국 사회의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것 정도...? 제가 미국 사회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 방도가 없으니 추측만 할 뿐이지만요.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는 선 채로 상체를 숙이고 비틀거리는 노숙자가 나오거든요. 저는 이 장면이 미국의 펜타닐 중독자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미국 사회와 연관지어 해석한 글도 본 것 같은데 기억이 확실하지 않네요.) 그리고 또 미국은 쉬운 해고로 인한 홈리스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아리애스터가 홈리스의 입을 빌려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아리애스터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스마트폰과 매스미디어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현대인이나 현대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보입니다. 영화 내용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대사의 톤에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고뇌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세상에 전시되는 건 결국 연예인이나 전문 직업인, 인플루언서, 갓생 사는 일반인 등등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데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평범한 나 자신을 비교하고요. 영화 내에서 '나는 내 삶이 어떤 것을 의미하기를 원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빛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시민의 자괴감으로도 느껴지더라고요. 아리애스터의 핵심 단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 unhomelike-집이 집처럼 느껴지지 않음-이라는 단어가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데, 가정과 가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의 주인공이 단순 편집증 환자인지, 아니면 실제 겪은 일을 말하고 있는 건지 상당히 헷갈리게 연출해뒀는데 저는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그렇게 치부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뾰족한 해석을 보고 싶기는 하네요. 왓챠피디아에 누가 '마지막 대사는 이해하면 무섭다'는 식으로 리뷰를 달아놨던데... 뭐가 무서운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편집증 환자가 하는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분은 대체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4. 동어반복이 맞기는 한듯 큰 주제는 다를지언정, 이 짧은 영화에서도 아리애스터 장편에 다시 등장하는 소재가 몇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가복제라고 하기는 좀 뭐하고... 왕가위도 늘 비슷한 영화를 만들어서 '10년째 같은 편지를 쓰는 왕가위'라는 제목의 칼럼이 발행된 적이 있거든요. 왕가위는 극단적일 정도로 같은 인물들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반복해서 특히나 그런 평을 든는 거지만, 사실 모든 창작자는 어느 정도는 자신의 핵심 소스를 가진 채 그걸 변주하며 창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옛날에 버스커버스커를 꽤 좋아했는데, 무명 시절 만든 곡들을 편곡하거나 다른 곡에 갖다붙이는 식으로 많이 활용하더라고요. 아리애스터도 확실하게 자주 사용하는 소재가 몇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두 개 발견했어요. 일단 '나무집'이라는 소재가 나왔을 때는 유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미드소마에서도 마지막에 불타는 노란 건물을 나무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는 다락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이러나저러나 안락하고 즐거운 느낌은 아니죠? 세라비에서는 '비명소리를 듣기에 완벽한 각도에 있는 나무집'이라고 표현하네요. 이 비명소리는 집에 불이 나면서 가족들이 죽어가며 지르는 비명인데요, 이 사고로 인해 주인공은 부모님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이 난 원인은 편집증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삼촌이에요. 가족 구성원에 의해 부모님을 잃게 되는 구조에서는 미드소마가 떠올랐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가장 큰 이유인 Birthday boy stab man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Fuck you!'를 반복하며 허공을 칼로 찌르는 시늉을 하잖아요? 그 장면이 세라비에 그대로 나와요. 그래서 어쩐지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더 이해할 수 없어졌어요. 그냥 이전 단편의 주인공을 엑스트라로 사용한 것인지, 어떤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Beau를 보고서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반대로 이 영화는 제게 의문만을 남겨주네요...
영화

no. 8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나는 머글이다.. 큰일났다... 본 당일에 후기를 안 썼더니 그나마 느낀 것도 다 휘발됐네요. 원래 디씨/마블 계열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아무 사전 지식 없는 상태로 갔더니 '와 화면 멋있다' '와 미겔 개쩌네' 이정도 감상밖에 못 느꼈어요. 이게 2편이라는 것도 영화관을 나온 뒤에 알았습니다. 2편이면 2편이라고 표기를 하란 말이야! 그치만 스파이더맨은 잘 팔린 IP니까 이렇게 좀 불친절하고 간지를 챙긴 표기를 해도 되는거겠죠? 잘 만든 거랑 별개로 저한테는 막.. 2시간 20분이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로 흥미진진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만은 내가 머글이라는 것을 은은하게 느꼈어요. 초장엔 그래픽 보는 재미로 봤는데 스토리 파트로 넘어가니까 슬슬 지루해지더라고요. 같은 날에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먼저 봐서 그런가 집중도 잘 안 되고... 뭔가... 스파이더맨들이 줄줄이 나와서 벅차올라야 할 것 같은 타이밍에 '그렇군요??'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치만 영화의 타겟층이 제가 아닌걸 어쩌겠어요. 제가 보고 흥미롭지 않았어도 여전히 좋은 영화입니다. 오프닝 시퀀스는 정말 멋졌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박력있는 드럼 연주와 함께 '걔만 그런 건 아니야'가 반복되는 대사가 나오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약간 긴 감이 있나? 싶었지만 오프닝으로는 최고인 것 같아요. 영화에 코믹스의 요소들을 가져온 것도 멋졌어요. 만화 대사 칸을 가져오거나, 코믹스 한 페이지를 화면에 띄워주는 연출도 좋았지만... 코믹스 설정의 개연성을 자연스럽게 가져온 것도 좋더라고요. 원래 스파이더맨 세계관이 어떻게 생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체별로 다양한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것을 '그런 세계관'으로 때려넣은 게 쿨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설정 붕괴 어쩌고 얘기가 너무 자주 나와서 좀 지겨웠음 (저는 머글이니까요) 미겔 얘기가 탐라에 꽤 많이 보였던 것 같고 저도 위에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취향은 아니었어요. 초반에 애너미 잡아먹을 것처럼 입 쩍 벌리는 장면만 매력적이었던 듯. 그웬 입으로 '어쩌고저쩌고 뱀파이어 스파이더맨'으로 묘사된 것도 나름 좋았고요. 근데 뭔... 미성년자 데려와서 가스라이팅하는 인간으로 느껴져서 딱히 매력적이진 않았네요. 미겔만의 문제는 아니고 그 집단 자체가 그렇게 느껴졌던 거긴 하지만요. 이렇게까지 쓸 얘기 없을 줄 알았으면 진작 후기 쓸 걸 그랬나봐요. 여튼 대단한 스토리를 기대하고 간 건 아니고 애니메이터를 갈아먹은 시각적 결과물이 어떤가 궁금해서 보러 간 거니까 나름대로 만족합니다. 그치만 마블 유니버스 쪽에 더 관심을 가지진 않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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