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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영화다섯 번째 흉추
마카로니 23-08-10 13:37 128
1. 젯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죄
허구한날 리뷰 쓸때마다 '저는 ○○영화 별로입니다' 이런 말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독립영화도 별로입니다. 변명하자면 저는 CJ 배급 한국영화도 별로고 가족영화도 별로고 로맨스영화도 별로고 좀비영화도 별로고 아포칼립스도 별로고 화면이 못생긴 영화도 별로고 더러운 거 나오는 영화도 별로고 죄 없는 강아지 죽이는 영화는 싫고 하여튼 편식이 심해요. 여튼 이렇게 입맛 까다롭고 취향에 안 맞으면 시도도 안 하는 흥선대원군인 제가 왜 뜬금없이 시놉시스가 취향이지도 않은 독립영화를 보게 되었느냐... 그것은 젯밥에 관심이 많아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품샵인 네이키드런치에서 특전 키링 제작에 참여했더라고요. 영화엔 큰 관심 없지만 키링은 갖고 싶었어요. 찾아보면 키링만 따로 판매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키링 하나 값이랑 비등비등한 돈으로 키링도 받고 영화도 보면 좋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왕이면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는데, 독립영화답게 도저히 볼 수 있는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관이 없더라고요. 반차 내고 보러 갈 정도로 원하는 건 아니라 포기했었는데, 태풍으로 인해 근무시간 조정이 되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타이밍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보고 난 지금은 이게 좋은 일이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 영화가 2023년에 본 영화 중 가장 취향이 아닐 걸 알았다면 안 봤을까요...? 올해 본 영화중에는 싸이코 남자친구가 단연 최악이었어서 종종 언급하곤 하는데, 둘 중 무엇이 영화냐고 물으면 당연히 다섯 번째 흉추를 고르겠지만... 뭘 한 번 더 보겠냐고 물으면 싸이코 남자친구를 보겠어요. 이하 리뷰는 주관적인 불호 의견을 담아 썼습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도 힘겨운 연약한 트친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기는 힘드실 것 같습니다...

2. 나는 루키즘의 노예
저는 루키즘의 노예입니다. 적어도 인간이 자본을 들여 생산해낸 건 예쁘고 향기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구찜통화의 시대에 환경오염시켜가며 구린 걸 굳이 만들어내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못생겼어요. 처음에는 미장센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더럽거나 기괴하거나 더러운 동시에 기괴한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서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더러운 게 싫은데 영화가 전반적으로 위생적인 측면에서 너무 더러워요. 영화의 메인 주제 자체가 곰팡이라 이미 더러운데 그 더러움이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가 도저히 납득이 안 되서 그냥 계속 더럽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이 영화는 '매트리스에 핀 곰팡이가 생명체가 되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인데, 사실 곰팡이 핀 매트리스만 진작 폐기했어도 영화 진행이 안 되는 수준이거든요? 아무리 판타지적 상상력에서 시작된 영화여도 그렇지, 이야기가 좀 상식적인 수준에서 진행이 돼야 '이건 이런 세계관이구나' 하고 받아들일 거 아니에요. '이게 의자? 정말 대단해!' 같은 대사가 나오는 이세계물이랑 다를 게 뭔가요???? 아니 매트리스에 곰팡이가 피었는데, 심지어 이불 아래에서 육안으로 보이는데 왜 그 위에 이불을 깔고 그대로 자냐고요. 이게 상식적인 전개냐고요. 매트리스에 곰팡이가 피었으면 좀 갖다 버려; 진짜 더러워서 못살겠네... 영화 내내 곰팡이 핀 매트리스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이 자주 길게 등장해서 보기 괴로웠어요. 더러워요... 더럽다고요...

더러운 거 얘기 실컷 했으니까 이제 기괴한 거 얘기 해야겠네요. 더러운 건 싫지만 저는 기괴한 건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 근데 아닌 것 같아요. 이 영화는 크리처물의 면모도 갖추고 있어요. 촉수 비슷한 게 나옵니다. 근데 그 촉수가 사람을 해치고 신체부위를 먹고 매트리스 밑을 기어다니는 크리처물스러운 장면이 너무 길게 많이 나와요. 마법소녀 변신씬도 최초로 변신할 때나 풀버전으로 보여주지 그 다음부터는 간소화시켜서 보여주는 게 불문율이거늘 딱히 아름다운 장면도 아닌 걸 꼭 1분씩 꽉꽉 채워서 넣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러닝타임이 1시간을 약간 넘어가던데, 1시간을 넘어보려는 의도였을까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레포트 글자수 채우려고 긴 단어와 접속부사와 공백과 문장부호를 쓸데없이 많이 넣는 우리네 모습이 떠올라요. 제가 말한 장면들 좀 줄였으면 러닝타임이 1시간 미만이었을 것 같긴 하거든요. 여튼 곰팡이랑 촉수 클로즈업해서 1분동안 보고싶으면 혼자 보시라고요 관객을 영화관에 가둬놓고 보게 하지 말고;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화면 보기가 힘들어져서 마지막 20분정도는 그냥 핸드폰 보면서 흐린 눈으로 봤네요. (상영관에 저 포함 두명밖에 없었고 그 한 명은 저보다 앞에 계셨어요)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건 아는데 도저히 이런 못생긴 화면을 보고 싶지가 않아서............

한편 이 영화는 곰팡이에서 시작해서 버섯으로 끝나는데, 버섯이 너무 마트 버섯이라 몰입도가 확 깨졌어요. 갑자기 뭔 억지감동 신파 결말이 나는데 거기다 새송이 팽이버섯 흰목이 검은목이 동충하초 노루궁뎅이의 향연이 펼쳐지더라고요?? 제가 마트에 온 줄 알았지 뭐예요. CG를 쓸 수 없었겠죠. 그랬겠죠... 하지만... 꼭 버섯이어야만 했나 싶네요. 포스터도 주길래 받아왔는데 이 버섯 화면이라 좀 짜증나요. 아 뭔 버섯이야 진짜 장난하나

3. 연애와 섹스를 메워야
연애란 대체 뭘까요? 대관절 뭐길래 독립영화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도통 놔주질 않는 걸까요? 딱히 건강해 보이지 않는 연애와 독립영화의 뜬구름 잡는 문어체 대사가 합쳐지니 역할놀이에 대단한 의미부여 좀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드네요. 이 영화에 나오는 연인이 세 쌍인데 셋 다 뭐 딱히 아름답지도 않고 애틋해보이지도 않고 대체 뭘 주제로 싸우는지도 모르겠고 현실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공허한 대사만 내뱉고 있으니 '뭐 어쩌라고' 싶고... 제목은 저렇게 붙여놓기는 했지만 딱히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다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저도 뭔 와닿지도 않는 그뭔씹 독립영화 대사 같은 걸 생산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4. 비주류란...
이 영화를 보면서 비주류 취향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비주류에 속해 있든 아니든 '나는 비주류다'라고 주장하지 않나요? 이 영화에서는 '내가 이렇게까지 비주류다'라는 과시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이런 거 좋아하는 자신을 굉장히 사랑하시는 듯... (개인적 의견입니다)
늘 말하지만 하고 싶은 걸 극단적으로 추구한 작품이 좋은데 이 영화는 이것저것 잡아보려다 길을 잃은 느낌이에요. 기괴한 걸 하고 싶었으면 아주 그 쪽으로 끝을 보는 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렇게 해도 제 취향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자기 취향을 밀어붙이는 뚝심에 존경을 보낼 수는 있었을 것 같거든요. 지금의 감상은 솔직히 그냥... '나 이상하지? 이상한 나 예술적이지?' 이런 느낌...

사실 저도 제 취향이 꽤 비주류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상영관을 나오면서 저는 참 마일드하고 일반적인 취향을 가진 머글 바닐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현을 뭐라고 해야 적절한지 모르겠는데, 요즘 대중에게 유행하는 컨텐츠를 보면 오타쿠적 취향이 왜 이상한 것 취급을 받는지 의아해요. 대중성 있는 컨텐츠가 더 폭력적이고 기괴하지 않나요? 이 작품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제에서는 상을 꽤 많이 받았더라고요.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계도 <언니의 폐경>에 상을 주는 알탕 문학계와 사정이 비슷한 걸까요?

쓰레기 영화까지는 아니고, 그냥 지독하게 제 취향이 아닌(그리고 이게 취향인 사람은 소수일 듯한) 영화입니다. 저한테 욕먹을 이유까지는 없는 영화인 것 같지만 제가 제 개인 홈페이지에 불호평 좀 쓸 수 있는 거잖아요. 키링 때문에 본 거지 진짜 제 취향 아니에요. 뭘 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 만드는 남자 감독에 편견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물론 이 영화가 좋았다는 사람과도 말 섞기 싫어요. 하지만 아리애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좋아하는 나도 누군가에겐 이런 존재겠죠...
마카로니

리뷰 쓰다 놓쳐서 추가
여튼 갓반인들이 오타쿠들이 역극하고 세계관 만드는 거에 뭘 그리 기겁하나 싶어요
오타쿠 역극이 이거보다 현실적이야

마카로니

자꾸 뭘 더하게 되네
여튼 전 독립영화의 문어체 대사가 참 별로라고 생각해요
사실 문어체에는 죄가 없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잘 발화하지 않는 형식의 말을 사용할 때는 빌드업과 화면이 잘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독립영화는 신인감독들이 많이 찍다 보니 대체로 그런 힘이 부족한 것 같아요
연기력의 문제인지 연출의 문제인지 그냥 대사를 못 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트위터에서 잊을법하면 돌아오는 미사여구 플로우랑 비슷한 면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박찬욱 감독 영화도 현실 사람들이 안 할 법한 대사 많이 나오는데 안 거슬리는 거 보면 문어체가 문제는 아님

마카로니

나는 왜 별로였던 영화만 자꾸 생각날까...

어쨌든 이 영화가 별로라고 느껴지는 지점을 적확하게 표현할 단어를 못 찾아서 좀 헤매고 있었는데 중2병이라고 표현하는게 딱인 것 같습니다. 예술남보다는 중2병임.

영화 초반부에 한강 아래에 잠긴 것들에 대한 대사가 길게 나왔는데, 역시나 독립영화풍 문어체였거든요. 이 장면에서 인물이 아니라, 물 속에서 찍은 영상 같은 게 삽입됐으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물론 제작비가 없었겠지요) 여튼 여러모로 영상 구성이 좀 단조로워서 아쉬웠음...

역시 자본주의가 짱인 것 같습니다

아니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맨프롬어스같은 명작도 회상씬 하나 없고 장소이동도 없는 초-제작비절감 영화잖아요
역시 영상은 죄가 없고 각본을 잘 써야 한다는 결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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