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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영화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마카로니 23-11-01 09:18 222
0. 해석 보기 전에 대충 적어보는 궁예
개봉 전부터 말이 많더니, 보고 온 트친들이 '난해하다' '2시간 내내 혼나고 왔다'는 평만 하더라고요. 대체 어떻길래 다들 이런 감상을 남기시나 싶어 최대한 사전정보 없이 보고 왔습니다. 의외로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보지 못한 게 더 많겠지만? 남겨두면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대충 간결하게 후기를 적은 후에 해석을 봐야겠습니다.

저의 얄팍한 감상은 '이거 전쟁 얘기하는 영화군'입니다. 영화 전반에 깔린 전쟁과 정치에 대한 은유를 많이 느꼈어요. 사실 벌써 영화가 좀 가물가물해지려고 해서 간단히 쓰고 얼른 똑똑한 사람들이 쓴 해석 보러 가야겠어요.

1. 마히토는 일본이다
사실 단언하기 참 그렇기는 한데 이 영화가 전쟁을 은유하는 영화이고 일본이 전범국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마히토가 조명하는 것은 일본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연히 일본인에게만 하고 싶은 질문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미야자키 하야오가 "너네 어떻게 살 거냐"라고 묻고 싶은 건 1차적으로는 일본인이라는 느낌이네요. 이래서 저는 영화 보는 내내 단 한 순간도 혼났다고 느끼지 못한 것 같기도 해요. 하여튼 내가 혼난 건 아닌듯?

제가 지브리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는데, 마히토는 지브리 주인공 중에서도 꽤 되바라지다고 해야 할까요. 뻣뻣한 느낌 아닌가요? 말투도 10대 주인공치고는 딱딱하다고 느꼈어요. 지브리에서 어머니를 잃은 소년이라면 좀 더 유약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히토는 강하다 못해 영악해요.

아버지는 '시골 학교에 차를 타고 가면 다들 놀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전쟁통에 부유할 이유가 사실 달리 뭐가 있겠어요. 전쟁에 휘말려버린 민간인으로서는 부의 흔적을 보면 반감이 들 뿐이죠. 아이들에게 마히토가 얻어맞게 되는 것도 개인 대 개인의 입장으로 봤을 때나 억울한 상황인 거지, 사실 전쟁의 발발에 아무 의견도 더하지 못하고 휩쓸릴 수밖에 없는 민간인과 전쟁을 결정하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권력자의 관계로 생각하면 얻어맞을만한 일입니다. 전쟁을 하고 싶은 민간인은 없어요.

그런데 마히토는 자신을 피해자 입장에 놓기 위해 스스로 자해해요. 심지어 좀 얻어맞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부상이에요. 자해로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일본이 전쟁에서 사용했던 카미카제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결말부에서 '이것은 내 악의의 증거'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민족적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히토 아버지 비중이 적어서 그냥 여기 같이 적는 거지만, 사실 저는 '주식 올라야 하니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의 친구들을 그에게서 느꼈습니다. 물론 전쟁이 누군가에게는 금전적 이득이 되지만 그런 걸 쫓으면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다가갈 수 없게 되죠. 아버지가 철저하게 영화 내의 이야기에 참여할 수 없는 외부인으로 그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남자 창작자들이 남자는 현실과 같이 있는 그대로 -이 영화의 경우에서는 가족 구성원에 속해있을 뿐 가정에서의 참여도로 따지면 외부인과 다름없는 지위로- 묘사하고, 여자는 현실과 상관없이 서사에 도움이 되고 보는 이에게 만족을 줄 판타지로 그리는 경향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아버지가 이룩한 부 때문에 마히토까지 학교에서 눈총을 받는 거 보면 연좌제가 떠오르기도 해요. (선대의 잘못이 자식의 잘못은 아니다-라는 메세지를 주고 싶었을수도 있겠지만 개인으로서의 연좌제와 국가의 역사적 책임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죠)

이건 좀 작품 외적인 얘기인데, 일본 컨텐츠는 '혈통주의'가 참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마히토도 그렇고, 주인공은 항상 특별한 혈통의 일원이잖아요. '일반인 사이에 섞여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실은 특별한 존재였다'는 장치 없이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으신지 종종 궁금합니다.

2. 새는 적군의 군인이다(왜가리 포함)
대놓고 군대인 앵무 군단이 나오니 이건 이견이 있기 힘들지 않을까요? 각종 새의 무리들이 마히토를 해치려 날아들기도 하고요. 적대적인 집단인 건 확실하죠. 특히나 앵무새들은 아예 마히토를 잡아먹으려 하잖아요? 그어살에서는 펠리컨과 와라와라, 앵무새와 마히토의 구도로 새 집단이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으려 드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와요. 작중에서 펠리컨의 입을 빌려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되는 장면이기도 하죠. 1차원적으로는 약육강식에 대한 비유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을 죽이게 될 수밖에 없는' 군인들을 조명하는 장치라고도 느꼈습니다. 앵무새 또한 마히토를 그냥 해하려는 게 아니고 먹으려 들잖아요. 새들이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아무 이유 없이 마히토를 공격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는 간단한 명제예요.

그러나 결국 그들 또한 개인으로 이루어졌기에 화합의 여지가 있어요. 특히나 왜가리와 마히토의 관계가 그래요. 처음엔 대립하고, 서로를 위협하고, 실제로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협력하게 되잖아요. 둘의 관계에서는 중간 단계가 특히 흥미로웠어요. 뒤통수 치려다 다시 한 번 도움을 받고 완전한 협력으로 넘어가잖아요. 전쟁 중에도 적군 병사를 해치지 않은 사례들이 떠올랐어요.

마지막에 앵무새들이 마히토의 세계로 넘어가는 장면은 피난과도 겹쳐 보이지 않나요? 나를 죽일 수 있는 강한 적인 것 같지만 압도적인 죽음 앞에서는 그들도 나와 같이 살고 싶어하는 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3. 큰할아버지와 앵무새 왕은 대립 관계에 있는 정치인이다
민간인과 군인은 결국 전쟁이라는 이념 싸움에 이용되는 장기말일 뿐입니다. 정말 이득을 보는 건 누구일까요? 결정권을 가진 정치인뿐이겠죠. 장기말인 마히토와 앵무새는 싸우지만, 정작 그 우두머리로 볼 수 있는 큰할아버지와 앵무새 왕은 함께 대화를 하며 걸을 수 있어요. 싸움은 수족끼리 하게 하고 정작 당사자들은 그러지 않는 구도, 꽤 익숙하지 않나요?

군인과 민간인을 희생하지만 그들에게 절대적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나름의 이상이 있습니다. 큰할아버지의 이상은 영화 내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생략하고, 저는 앵무새 왕 또한 자신의 이상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느꼈어요. '왕답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대사에서요. 이 얼마나 사명감이 드러나는 대사인가요? 앵무새 왕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만의 이상이자 선을 위해 나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 그 이상이나 이상을 이루려는 방식이 옳든 옳지 않든간에요.

'나를 배우는 자는 죽는다'
무덤 입구의 이 문구가 참 좋았거든요. 보자마자 이건 틀림없이 핵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기술의 발달이 인류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주제는 국가를 막론하고 자주 등장하는 소재기도 하고요. 큰할아버지 디자인 아인슈타인 닮지 않았나요? 그냥 나온 디자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세계에서 "천국인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앵무새 병사와, 아무 감흥 없는 앵무새 왕이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민간인과 일반병에게 경이로운 것이 권력자에게는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한 간극이 보여서 좋았어요. 분위기는 다르지만, 겨울 궁전을 처음으로 본 러시아 혁명군과도 같은 결인 것 같습니다.

4. 히미와 나츠코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히미와 나츠코는 각각 과거와 현재의 이념이라고 느꼈어요. 제가 홍콩영화를 하도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이런 식으로 상실한 과거를 대체하는 현재의 무언가가 있으면 보통 국가 정세를 은유하는 장치더라고요.

히미는 과거입니다. 마히토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과 일본인들이 툭하면 다이쇼로망 운운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꽤 비슷하지 않나요? 하지만 마히토가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히미는 버섯구름과 비슷한 형태의 폭발을 만드는 과거예요. 죽은 사람이 인과를 비틀어 돌아오면 안 되듯이, 핵전쟁도 돌아와서는 안 됩니다.
(히미는 불꽃놀이처럼 터지는 불로 새를 죽이죠. 공교롭게도 마침 최근에 불꽃놀이가 철새에게 해롭다는 트윗을 봤어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걸 염두에 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츠코는 현재예요.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이미 닥쳐와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마히토가 나츠코를 '싫어한다'고 표현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하지는 않죠. 남의 입을 빌려서지만 '너는 나츠코를 싫어하잖아'라는 말도 들었고요.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나츠코는 마히토에게 다정해요. 사실 이야기를 편리하게 만들어 주고 남성 주인공을 이유 없이 포용하는, 무조건적 조력자 캐릭터로 보여서 캐릭터의 쓰임이 썩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쓰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급진적인 사회의 변화는 비록 그 방향이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반발이 생깁니다. 저는 노동자라서 한국에서 토요일이 휴일이 되었을 때의 반발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막연한 반감 따위를 생각했지만(....) 저 자리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겠죠?

마히토는 히미의 도움을 받아 나츠코를 구해내는 데 성공하는데,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더 나은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히미가 마히토와 같이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가 예정대로의 죽음을 맞는 것은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적시고요. 전쟁이라는 게 다양한 이해관계가 엮여 발발하는 것이다 보니, 과거의 사람들이 현재의 역사를 안 채 다시 과거로 돌아간들 결국 과거는 되풀이될 것입니다. 그때는 그래야 했죠.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찾던 큰할아버지가 결국 히미와 마히토 모두 돌려보내기로 한 것은 과거의 이념과 과거로부터 이어진 감정을 현대인들이 품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메세지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건 다 옛날 일이니까 과거는 잊고 모두 나카요쿠해요'라는 꼬움이 아니 느껴질 수는 없지만... 원론적으로는 좋은 얘기죠.

한편 히미는 이미 마히토를 낳았으며 '너를 낳는 것은 멋진 일이니까'라고 말하고, 나츠코 또한 임신 중이며 자식을 낳죠. 음.. 대충 어떤 얘기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저는 남자가 그리는 임신 모티브가 싫습니다. 굳이 생각 안할래요. 너를 낳아야 하니 죽음을 각오하고 원래의 세계로 다시 가겠다고 말하는 어린아이 모습을 했으나 모성을 가진 여캐라니 죽어도 싫어 징그러워

5. 식사
지브리 하면 식사죠. 그어살에서도 '식사'의 모티브가 참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마히토는 큰할아버지 이외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한 번씩 식사를 하지 않나요? 나츠코랑 한 번, 저택의 할머니들이랑 한 번, 키리코랑 한 번, 히미랑 한 번. 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먹을 식에 입 구 자를 쓰는 식구라고 부르는 것처럼, 창작물에서의 식사는 거진 소통의 표현입니다. 식사 모티브가 약육강식으로 한 번 비틀려 중첩해 등장한 것도 흥미롭네요.

6. 끝!
그냥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펠리컨들이 들이닥쳐서 무덤 문을 열고 '가자'고 속삭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이 참 좋아요.

대충 순수하게 영화만 보고 느낀 것은 이 정도고요... 해석글을 보면 이 후기가 참 바보같아질 수도 있는데 영화에 정답이 어디있습니까. 하여튼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다른 사람들 해석이랑 후기 좀 보고 다른 게 생각이 나면 더 추가하고, 아니면 그냥 이대로 남을 것 같습니다....
+추가) 다른 사람들 후기 보고 왔는데 그럭저럭 잘 보고 온 것 같네요. 후기 추가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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