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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영화빨강, 파랑, 어쨌든 찬란
마카로니 23-09-01 15:01 40
1. 이걸 어떻게 안 봐
미국 대통령과 영국 왕자가 연애하는 얘기라니 이걸 어떻게 안 봐요. 저 한 문장만 봐도 벌써 재밌어!!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아마존 프라임에 나오자마자 바로 봤답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갖다쓴 것 치고는 나이브하고 평탄하기는 했는데 배우가 잘생겨서 나름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봤습니다. 원작소설이 미국에서 잘 팔렸다던데 어떤 감성으로 잘 팔린 걸까요? 트와일라잇도 사실은 인소에 가깝다던데 아마 비슷한 계열 아니었을까 싶어요.

2.퀴어물의 얄팍함이란
2010년대 초반쯤 퀴어영화를 꽤 많이 봤었는데, 서사적 설득력이나 만듦새가 아쉬운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BL/GL이 상업적 장르로서 오픈리하게 다뤄지던 시절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고, 게이 당사자가 그린 퀴어는 BL과는 다른 맛이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소자본 영화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별로였던 영화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빨강파랑어쨌든찬란은 이런 얄팍함에서 2010년대 한국 퀴어영화와 결을 함께합니다.굳이 한국영화로 한정한 건.. 해외에서는 1900년대에도 브로크백마운틴이나 춘광사설같은 수작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왔잖아요. 사실 2020년대에 제작되는 퀴어 컨텐츠라고 뭐 대단히 질이 좋은 건 아니지만, 웹드라마 만듦새 조악한 건 장르랑 무관한 일이고, 무엇보다 한국에는 이제 윤희에게라는 최고의 퀴어영화가 있으니 2010년대 퀴어영화로 한정하겠습니다.

어쨌든 멀리 돌아왔는데... 저런 이유로 2010년대 이후로는 퀴어물을 안 보게 되었어요. 루키즘적 발언을 하자면 퀴어영화에는 미남 배우가 많이 안 나오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건 오로지 잘생긴 남자라고요. 화면 밖에도 있는 평범한 남자들이 어떤 서사로 사랑해봤자 와닿지 않는다고요. 김경진이 유상무를 동경해서 농구를 시작하든 말든 알 바 아니잖아요... 어쨌든 퀴어 연기는 기피배역인 것 같고, 잘생긴 배우들은 잘 팔릴테니 이런 거 안 해도 다른 배역이 있겠죠... 그나마 최근에 배우 얼굴에 홀려서 본 게 파이어버드인데 이것도 보고 나서 너무 별로여서 욕을 잔뜩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빨강파랑어쨌든찬란은 배우 둘 다 잘생겨서 스토리가 좀 얄팍해도 볼 맛이 났어요. 미남 최고. 그리고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해맑음입니다. 영화가 얄팍한데 비극이면 진짜 맥빠지거든요? 퀴어들이 차별받는 게 현실이다 보니 퀴어영화도 자연스럽게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거 없어요. 보수적인 영국 왕자가 아웃팅당해도 다정한 영국 국민들은 무지개 깃발 들고 왕성까지 와서 응원해줍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왕 영화가 나이브할거면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실제 인간의 삶처럼 입체적이지 못할거면 갈등이 없는 편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3.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니 근데 영화가 얄팍해도 너무 얄팍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실성 챙길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는 장면이 종종 나와서 웃겼어요. 헨리 왕자가 추억의 장소랍시고 문 닫은 박물관 따고 들어갈 때는 국중박을 회의장소로 쓰고 싶어하는 현 정권 생각나서 어쩐지 로맨틱하다는 생각보다는 권력층의 횡포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네요. 마초이즘의 성지 텍사스에서 게이 아웃팅당한 아들이 있는 대통령이 100% 몰표를 받아 역전에 성공하는 장면에서도 '전라도에도 빨간당 찍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되냐' 싶었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국대통령 가족이 너무나도 퀴어프렌들리한 이상적인 부모님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도 났네요. 아들 아웃팅당하자마자 동요도 안하고 그냥 쿨하게 감싸안아주심... 이게 다양성의 나라 미국일까요? 최근 미국 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성애자가 더 드물다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물론 이런 걸 염두에 둔 건 아니겠지만요...

모든 갈등이 5분 안에 끝나는 것도 좀 웃긴 포인트였네요. 혐관으로 홍보하길래 싸우다가 정드나보다 싶었는데 체감상 혐관 비중은 20분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그냥 알콩달콩 문자로 연애하다가 눈 맞고 아주 미약한 반대에 부딪힐 뻔하다가 할아버지 앞에서 키스나 하고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는 그런 시놉시스였네요. 보통 모님이랑 같이 영화 보면 끝나고 나서도 1시간씩 같이 떠들곤 하는데, 이 영화는 그냥 잘생겼다 재밌었다~ 말고는 할 말이 없어서 금방 해산했습니다. 왜 할 말이 없냐.... 그것은 얄팍하기 때문이겠죠? 헨리 왕자 얼굴 한 번 더 보고싶어서 한 번 더 볼까 생각했는데 미적거리다가 아마존프라임 체험기간이 끝나버렸지만 전혀 아쉽지 않은 걸 보면 그냥 한 번 보면 족한 영화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오로지 이것만 보기 위해 아마존프라임 결제하는 건 비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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