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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영화저수지의 개들
마카로니 23-08-11 11:12 37
1. 어쩌다보니 세계의 느와르에 손을 대다
제가 뭐 딱히 느와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홍콩영화를 좋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고전 느와르도 보게 되고 뭐 그런 상황들이 종종 있곤 합니다. 그래서 홍콩 느와르 작품은 몇 편 봤지만, 서양에서 제작한 느와르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탐라에서 모님이 왓챠파티 모집하시길래 잘까 말까 고민하다 보게 됐는데, 좋은 선택이었네요! 보면서 알탕의 개저들을 마구 비웃긴 했지만 영화적으로는 너무 잘 만든 영화였어요. 영화 공부를 따로 한 적도 없는데 이게 데뷔작이라니 역시 난 놈은 따로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네요.

2. 연출이 멋지다!
영화를 보면서 종종 제작비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맨 프롬 어스'를 볼 때는 제작비가 별로 안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더 문'을 볼 때는 이거 아무리 봐도 돈을 잔뜩 발랐는데 지구찜통화의 시대에 자원을 이런 식으로 낭비해도 되나 싶었죠. 당연히 모든 영화를 볼 때 제작비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사례들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제작비 생각이 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럼 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저수지의 개들'은 어떠냐면요, 영화 잘 보다 중간에 문득 '제작비 좀 아꼈겠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요. 장면이 지나간 후에 생각해보면 머리를 잘 써서 돈 안 쓰고 개연성을 잘 챙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마 전 '다섯 번째 흉추'를 보고서 연출이 세련되지 못함을 아쉬워한 적이 있는데요, '저수지의 개들' 또한 별도의 장면 삽입 없이 인물의 대사로 회상 장면을 대신하는 장면이 똑같이 들어갔더라고요. 그런데 저수지의 개들에서는 그 장면이 불필요하다거나, 다르게 연출된 장면으로 대체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역시 장인에게는 도구도 방법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냥 잘 만드는 사람과 잘 못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이군요...

3. 이것이 개저느와르다
영화의 만듦새가 좋은 거랑은 별개로 등장인물들은 하나하나 너무나 비장한 개저들이라서 웃기더라고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폭력이라는 소재를 늘 '죄값을 치러야 하는 것'으로 다룬다는 해설을 들었는데, 그런 성향을 생각해보면 등장인물들이 우습게 그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도 같아요. 애초에 초반에 팁을 내니 마니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멋지게 그릴 생각도 없어 보이긴 하지만요.

보면서 느낀 것은... 역시 남자는 남자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 미스터 오렌지의 사연과 미스터 화이트의 동료애도 눈물겹지만, 미스터 블론드에 대한 나이스 가이 에디의 사랑이 너무나 절절했어요. 애칭도 있고 거의 짝남이던데요... (근데 사실 미스터 블론드가 끝내주게 핫하긴 했어요) 줄거리는 그냥 멋진척하는 남자들의 똥폼쇼 그 자체였지만 연출적으로 정말 멋진 영화였습니다. 비슷하게 서술보다는 대사로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경향이 있는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이 생각나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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