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영화달짝지근해: 7510
마카로니 23-08-09 23:19 103
1.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요새 영화를 자주 보다 보니 어쩐지 이 영화 포스터를 자주 마주치게 되더라고요. 저는 한국영화 별로 안 좋아하고요, 특히 '잘 팔리는 중년 남배우'를 기용한 한국영화에는 특히 편견이 있어요. 하정우 나오는 CJ 배급 한국영화는 안 봐도 대충 영화의 톤이 느껴지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에도 편견을 가졌습니다. 유해진을 쓰는데 영화 제목이 달짝지근'해'라니... '한층 유해진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짤 같은 느낌이라서 사실은 현실 유해진의 캐릭터에 기댄 리얼리티 형식인 줄 알았어요. 영화라고도 생각 안 했습니다. 진짜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아니 근데 포스터를 보시라고요. 영화 설명은 하나도 없고 '유해진 첫 코믹로맨스 도전' 이것만 덜렁 써놓고 영화관이랑 영화관 사이트에 저 포스터만 도배해놨다고요. 누가 봐도 유명한 남배우 하나 데려다 그 이미지만 쏙쏙 빼먹으려는 도전이잖아요?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잖아요? 여튼 그래서... 사실 시사회 당첨되지 않았다면 10000원 할인쿠폰 받아도 볼 생각 안 했을텐데, 그랬으면 인생 손해볼 뻔했습니다. 고마워요 씨네큐.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해 개봉 영화 중에서는 킬링로맨스랑 견줄만한 웰메이드 코미디네요. 재밌었어요!

2. 로맨스코미디가 아니고 코믹로맨스
킬링로맨스도 달짝지근해도 상영관에서 웃음이 꽤 자주 터진 영화였는데, 빈도수는 달짝지근해가 더 높은 것 같아요. 킬링로맨스는 개그 코드가 안 맞아서 극불호였던 사람도 꽤 많은 것 같은데, 코미디의 대중성은 달짝지근해 쪽이 훨씬 좋다고 느꼈어요. 킬로가 웃기면서도 '이 인간 뭐 먹고 이런 대본 썼지'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든다면 달짝지근해는 그냥 깔끔하게 웃겼거든요.

사실 천박한 밈이 뒤덮은 현대에 대중성 있는 코미디를 보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가 여간 어려워졌는데요, 웃기려고 무리수를 두지 않는 영화라 좋았습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표현보다는 실없는 말장난 aka 아재개그가 중점인 영화예요. 그리고 인물들이 굉장히 현실적인데, 현실의 얼렁뚱땅 유쾌한 부분을 잘 뽑아 가져온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면, 회사에서의 회의 장면이 나오는데 진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얼렁뚱땅 상황이라 깔깔 웃었어요. 사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세계는 현실적이지 못할 때가 너무 많아서... 특히나 회사를 다니고 나서는 근무지 배경의 모든 매체를 '저게말이되냐' 생각하며 흐린눈으로 보게 됐거든요? 근데 달짝지근해에서는 진짜 얼레벌레 돌아가는 직장인의 하루가 보여서 '그래 이게 회사지' 생각하며 즐겁게 봤습니다.

심지어 눈에 띄게 밈을 사용한 부분도 딱히 안 보였어요. 솔직히 요새 영화들은 웃기려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밈 갖다쓴 대본이 너무너무 많아서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닌데, 코미디를 지향하면서도 밈이 없어서 놀라웠네요. 코미디 비중이 꽤 높습니다. 웃겨요. 명사로 굳어진 '로맨스코미디'가 아니라 '코믹로맨스'로 표기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3. 웬걸? 볼만해. 아니? 재밌어.
놀랍게도 이 영화는 제법 PC함에 가깝습니다. PC함을 노리고 그렇게 만든 건 아니겠고 당연히 완벽하지도 않겠지만 트위터 하는 여성으로서(ㅋㅋㅋㅋㅋ) 거슬리는 부분 없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아~~ 이런 포인트로 좋은 장면이 꽤 많았는데 개봉 전 영화라 상세하게 쓰기가 좀 그러네요. 영화가 별로면 그냥 쓸텐데, 추천하고 싶은 영화라서 혹시나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의 즐거움을 뺏기 싫어요.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써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여성 당사자로서 남성이 여성을 무력으로 위협하는 상황을 보는 게 좋을 수가 없잖아요. 이 영화에서는 '참교육'적인 장면은 안 나옵니다. 게으른 창작자들이 으레 써먹는 '힘의 논리' 같은 게 거의 없어요. 세계 자체가 현실보다 안전하고 친절한 느낌이었는데 그게 좋았네요. 사실 여성 캐릭터가 좀 납작하게 쓰인다는 기분이 드는 장면이 없진 않은데 남성 캐릭터도 같이 납작해서 무시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창작물 속 세계가 너무 편리하게 돌아가면 매력이 뚝 떨어지는 영화가 더 많지만 이 영화는 톤 자체가 가벼워서 그런가 괜찮았어요. 오~ 이 한국은 그런 세계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느낌?

4. 배우 기용이 기가 막힌다
조연으로 정우성이랑 임시완이 나오더라고요? 분량은 많지 않은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티피컬한 미남 배우들을 이렇게 쓴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 다 쓰임이 신선해서 좋았습니다.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 줘요.

한선화 씨도 너무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전반적으로 조연 여성 캐릭터들이 꽤 매력적인 느낌이네요. 캐릭터가 납작한가 싶은데 조형의 게으름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사람' 그 자체인 것 같아서 너무 귀엽더라고요. 위에서 말했듯이 세계관 자체가 현실보다 가벼운 느낌이라 캐릭터가 단순한 게 위화감 없는 느낌이기도 해요. 역할 자체가 술꾼도시여자들의 느낌이 좀 있기는 한 듯?

그리고 주인공의 딸인 진주가 꽤 재밌는 캐릭터였어요. 이 영화의 최강자일지도? 좋은 지점이 좀 있었는데 말하면 너무 스포일러라 못 쓰겠어요. 근데 진짜 좋음.

하 그리고 저 원래 좀 나이먹은 양애취 하남자 좋아하는데 차인표 씨가 분한 캐릭터 꽤 취향이었어서 짜증나요......

5. 짱 재밋음!
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고싶은데 개봉을 안 해서~~~ 여튼 진짜 재밌게 봤어요. 해석할 필요 없는 영화 진짜 간만에 보는 것 같은데 이 감독 영화 잘 만드네요. 이런 영화는 미장센이 좀 별로인 경우가 있는데 화면도 꽤 예뻤고요. 전작이 궁금해지는 감독입니다. 사실 저는 제가 재밌게 본 영화도 추천 잘 안 하는데 (당연함... 보이즈어프레이드 같은 영화만 좋아함...) 이건 진짜 가족이랑 봐도 무방한 영화예요. 영화관 티켓 값이 너무 올라서 영화관 가서 보시라고까지는 못 하겠지만 기왕 영화관 가실 일 있으면 추천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KIN BY ⓒMonghon
arrow_up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