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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영화C'est La Vie
마카로니 23-07-21 13:00 89
1. 저는 보이즈어프레이드에 미친 인간입니다
트친분이 제가 보의 장례식을 주최하는 꿈을 꾸셨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어도 그 분 타임라인에서는 제가 압도적 보어프1짱입니다. 근데 저 나름 트위터에서는 얘기하고 싶은 거 많이 참았거든요...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좋아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리애스터가 저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요?

여튼.. 저는 보어프 정보를 찾아 해외 포럼을 떠돌던 중 영화에 나오는 Birthday boy stab man의 원형이 아리애스터의 단편영화 C'est La Vie에 등장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워듣게 됩니다. 배우도 같아요! 그러면 봐야지...

까지 쓰고 리뷰를 미뤄왔습니다. 진짜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어서요. 그래도 써야겠죠? ㅠㅠ 해외 단편영화라 해석글 찾기 힘든 게 슬프네요.

2. 이거 진짜 뭐 하는 영화야
이전에 아리애스터의 다른 단편영화인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를 리뷰하면서 완성도가 높다는 말을 했었거든요? 전하고자 하는 바도 확실한 편이고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존슨즈 가족의 기묘한 일보다 C'est La vie(이하 세라비)가 이전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어쨌든 아리애스터도 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사람이니까 과제를 제출해야 했을 거고요. 그런데 세상에. 존슨즈 가족의 기묘한 일은 2011년작이고, 세라비는 2016년작이지 않겠어요? 이 영화는 제작자가 미숙해서가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만든 거구나 싶어 아득해졌습니다. 아리애스터는 2011년에도 2023년에도 변함없이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인데 그 중간인 2016년에 만든 영화가 길을 잃었을리가 없잖아요!

영화는 일단... 멋있어요. 음악적으로 스타일리시한 느낌입니다. 저는 아리애스터 영화 중에서는 특히 유전의 사운드트랙을 좋아해요. 아리애스터 장편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다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요, Ost가 아니더라도 선곡을 보면 아리애스터의 선곡 센스가 좋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영화에서 보이는 것만큼 들리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리애스터는 공포영화를 주로 찍는 감독이라서 더 음향을 중요시할 수도 있겠네요. 어떤 장르가 안 그렇겠냐만은, 공포영화에서는 특히나 분위기 조성에 음향이 중요하잖아요?
쓰다 보니까 또 삼천포로 갔는데, 세라비는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이 랩을 하듯 빠르게 대사를 읊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비트가 깔려요. 그래서 영화가 아니라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영화의 속도감이 인상적이었어요. 음악에도 관심이 있는 아리애스터가 하고 싶은 말 많은 김에 이런 형식을 차용해본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네요.

3.그래도 일단 말을 해보자면요
영화 내용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 하나도 이해를 못했어요. 아리애스터가 미국 사회의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것 정도...? 제가 미국 사회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 방도가 없으니 추측만 할 뿐이지만요.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는 선 채로 상체를 숙이고 비틀거리는 노숙자가 나오거든요. 저는 이 장면이 미국의 펜타닐 중독자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미국 사회와 연관지어 해석한 글도 본 것 같은데 기억이 확실하지 않네요.) 그리고 또 미국은 쉬운 해고로 인한 홈리스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아리애스터가 홈리스의 입을 빌려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아리애스터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스마트폰과 매스미디어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현대인이나 현대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보입니다.

영화 내용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대사의 톤에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고뇌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세상에 전시되는 건 결국 연예인이나 전문 직업인, 인플루언서, 갓생 사는 일반인 등등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데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평범한 나 자신을 비교하고요. 영화 내에서 '나는 내 삶이 어떤 것을 의미하기를 원합니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빛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시민의 자괴감으로도 느껴지더라고요. 아리애스터의 핵심 단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 unhomelike-집이 집처럼 느껴지지 않음-이라는 단어가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데, 가정과 가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의 주인공이 단순 편집증 환자인지, 아니면 실제 겪은 일을 말하고 있는 건지 상당히 헷갈리게 연출해뒀는데 저는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그렇게 치부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뾰족한 해석을 보고 싶기는 하네요. 왓챠피디아에 누가 '마지막 대사는 이해하면 무섭다'는 식으로 리뷰를 달아놨던데... 뭐가 무서운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편집증 환자가 하는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분은 대체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4. 동어반복이 맞기는 한듯
큰 주제는 다를지언정, 이 짧은 영화에서도 아리애스터 장편에 다시 등장하는 소재가 몇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가복제라고 하기는 좀 뭐하고... 왕가위도 늘 비슷한 영화를 만들어서 '10년째 같은 편지를 쓰는 왕가위'라는 제목의 칼럼이 발행된 적이 있거든요. 왕가위는 극단적일 정도로 같은 인물들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반복해서 특히나 그런 평을 든는 거지만, 사실 모든 창작자는 어느 정도는 자신의 핵심 소스를 가진 채 그걸 변주하며 창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옛날에 버스커버스커를 꽤 좋아했는데, 무명 시절 만든 곡들을 편곡하거나 다른 곡에 갖다붙이는 식으로 많이 활용하더라고요. 아리애스터도 확실하게 자주 사용하는 소재가 몇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두 개 발견했어요.

일단 '나무집'이라는 소재가 나왔을 때는 유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미드소마에서도 마지막에 불타는 노란 건물을 나무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는 다락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이러나저러나 안락하고 즐거운 느낌은 아니죠? 세라비에서는 '비명소리를 듣기에 완벽한 각도에 있는 나무집'이라고 표현하네요. 이 비명소리는 집에 불이 나면서 가족들이 죽어가며 지르는 비명인데요, 이 사고로 인해 주인공은 부모님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이 난 원인은 편집증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삼촌이에요. 가족 구성원에 의해 부모님을 잃게 되는 구조에서는 미드소마가 떠올랐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가장 큰 이유인 Birthday boy stab man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Fuck you!'를 반복하며 허공을 칼로 찌르는 시늉을 하잖아요? 그 장면이 세라비에 그대로 나와요. 그래서 어쩐지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더 이해할 수 없어졌어요. 그냥 이전 단편의 주인공을 엑스트라로 사용한 것인지, 어떤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Beau를 보고서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반대로 이 영화는 제게 의문만을 남겨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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