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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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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no. 18  멋진 징조들

1. 드디어 멋진 징조들을 보다 가만히 트위터만 하고 있어도 연성이 굴러들어오는 장르들이 종종 있잖아요. 멋진 징조들도 제게는 그 중 하나였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는 몰라도 아지라파엘과 크롤리의 존재는 알고 있었거든요. 천사와 악마라니 뭐 하는 작품인가 궁금은 했지만 귀찮아서 '나중에 봐야지'라는 생각도 안 한지 어언 n년... 다른 작품 보려고 아마존 프라임 체험기간을 시작하려다 6부작 드라마인 것을 알고 냉큼 시작해버렸습니다. 1년 결제한 왓챠는 내버려두고 체험기간이 1주일인 새 플랫폼에서 뽕을 뽑으려 하다니 참 이상하군요. 2. 유치해! (Positive) 저는 드라마를 썩 좋아하지는 않아서 1시간 내외의 컨텐츠는 회사에서 점심 먹으면서 보는 편이에요. 3일간 별 생각 없이 관성처럼 하루에 한 화씩 보고 나서 저는 '그렇게까지는 재밌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 드라마 내의 사건이 아니라 아지라파엘, 크롤리 두 캐릭터만 등장하는 연성만 탐라에 들어오는지 알 것 같다고도 생각했어요. 세계관이 방대하긴 한 것 같은데 너무 캐릭터 두 명의 매력이 드라마를 멱살잡고 끌고 가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4화쯤 보니까... 제가 이 드라마의 세계관에 대해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건 진지한 정통 판타지가 아니라 신성모독 코미디 쇼였던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머리를 비우고 그냥 생각없이 봤더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시의적절하게 시즌2를 다 보신 트친님이 비명을 지르시길래 얼른 시즌1을 끝내고 시즌2를 보고 싶다는 원동력이 생겨서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 모든 갈등이 너무 쉽게 해결되는 느낌이라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코미디물이면 그럴 수 있죠. 원작소설이 어떤 뉘앙스로 쓰였을지 대충 짐작이 가서 오히려 원작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3. 쉬핑이 잘 팔리긴 하나봐요 아지라파엘이랑 크롤리가 너무 비게퍼하는 아이돌마냥 알콩달콩해서 좀 웃겼어요. 어쨌든 여자들한테 팔아먹으면 뭐든 돈이 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나쁘다는 건 아닌데 너무 대놓고 해주니까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둘이 친구도 아니라고 해놓고 하여튼 웃겨요 정말... 2000년대 한드의 '웃겨 정말' '별꼴이야'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CP인 것 같네요. 시즌2에서는 더 찐해질것같던데 대체 뭘 할지 궁금합니다.
드라마

no. 1  슬립: 차원이 다른 그녀의 원나잇

1. 최강의 어그로 최근 싸이바-대학에 다니면서 자아실현을 위한 예술과 금전가치 창출을 위한 예술은 아주 다른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른바 '순문학'과 '장르소설(또는 웹소설)'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지금까지 들은 강의의 사례로만 보자면) 순문학계에서도, 장르소설계에서도 순문학과 장르소설은 아예 다른 분야라고 못박아둔 것 같습니다. 지면의 크기와 연재 방식의 차이가 글이 쓰여지는 방식까지 바꾼다고 하더라고요. 각설하고, 웹소설의 핵심은 다음 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 화가 짧으면 한 권의 첫 장을 펼치는 것보다 심리적 장벽이 낮지만, 그만큼 독자가 이탈하기도 쉽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즉 현대 미디어의 핵심은 어그로인 거죠. 드라마 보고 이 얘기를 왜 꺼내냐면, 이 드라마에는 웹소설을 잘 팔기 위해 갖춰야 할 요소가 다 들어 있다는 감상을 내내 받았기 때문입니다. 총 7화짜리 드라마인데, 매 화가 끝나기 5분 전에 엄청난 떡밥이 뿌려지는 탓에 첫 날 4화를 몰아서 봤어요. 생각지도 못한 전개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기 때문에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슬립: 차원이 다른 그녀의 원나잇'이고요, 포스터의 캐치프레이즈는 무려 '내 XX가 웜홀인 것 같아' 입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어그로인가요... 어그로가 현대 컨텐츠의 덕목이라고 한다면, 이 드라마야말로 지극히 현대적인 작품입니다. 진짜로.. 2. 서양인에게 오리엔탈 컬쳐란 무엇이길래 작품에서 잘 와닿게 표현한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스키마로 추정하건대 이 드라마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는 '완전한 만족이란 있을 수 없으니, 현재를 사랑하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 내에서 불교에 관한 메타포가 굉장히 잦게 등장하는데, 불교의 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메세지인 것 같아요. 참 좋은 메세지입니다. 그런데... 첫 문장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작품은 말하고 싶었던 주제가 잘 와닿지 않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사용된 메타포와, 드라마의 전개가 조화롭게 맞물리지 못하고 모두 따로 놀아요. 서양인이 만든 매체라는 특성까지 합쳐져서, 제작자가 최근에 불교를 접하고 *신비로운 아시안 컬쳐*에 대한 환상으로 끼워넣은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고 제가 동양인이라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맞습니다) 그리고 이 불교적 교리에 힘을 실어주듯 주인공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며 주변 사람들을 은근히 괴롭게 한다'는 묘사가 주변인물들의 입을 빌려 두어 번쯤 나오는데, 앞에서 쌓은 빌드업이 없으니 드라마가 그렇게 흘러가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지금 리뷰 쓰면서 생각한 건데, 사실 이 작품에서는 불교를 빼도 전개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3. 극본의 불가항력 저는 장르에는 클리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창작물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이성적일 수는 없지요. 그러면 픽션은 진행이 안 됩니다. 공포영화 주인공은 호기심 때문에 위험한 장소를 들쑤시다 무서운 존재를 맞닥뜨려야만 하는 것처럼요. #장르를_시작도_못하게_해보자 같은 해시가 괜히 있는 게 아니죠. 그런데 클리셰의 배치도 정도껏 해야 장르문법으로 넘어가지,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이 너무너무 답답합니다. 대화를 하는데 거의 모든 대화가 사람만 둘일 뿐 단방향으로 흐르다 끝나버려서 갈등 해소가 안 돼요. 대화만 하면 해결되는데 왜 대화를 안 나누냔 말이에요.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얼키고설켜서 상황이 꼬이는 것도 아니고, 정말 쉬운 방식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악화시키는 전개가 매번 이어지니 매우 답답합니다. (얼마 전 원피스 실사영화화에 대한 트윗에서, 사람은 2D로 그려진 만화보다 실존 인물이 연기하는 작품에서 심리적 거리감이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더 견딜 수 없어한다는 내용을 봤는데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게다가 제목처럼 주인공이 XX를 통해 (하...) 평행우주를 넘나드는 설정인데, 주인공의 상황 판단력이 너무나 떨어져요. 평행우주로 떨어진 걸 알면서 왜 원래 세계의 자신에 집착하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이상한 시선만 받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하냐구요... 그러니까 평소에 이세계물도 좀 보고 그래야지 머글들이란 아이고 답답해 4. 미국에게 섹스란...? (사실 안 궁금함) 제목과 캐치프레이즈에서 주인공의 섹스라이프를 보게 되겠다는 예상은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불필요하게 여자 벗은 몸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배우가 감독이라 할 말이 없네요. 감독이 시켜서 벗은 것보단 자의로 벗은 게 낫죠.... 자의로 벗었다고 해서 설마 배우가 싸이바-노출증-환자라서 벗었겠습니까.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은 배우일 뿐이겠죠. 그런데 대체 누가 '벗을 때는 벗어야 진정한 배우다' 같은 명제를 만들었냐고요. 심지어 딱히 벗어야 할 때가 아닐 때도 벗어요. 대체 왜?? 제가 본 투 비 아시안 유교걸이라 과민반응하는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는 별 거 아닐지도 몰라요. 그런데 섹스에 개방적인 것이 쿨한 것이라는 백래시가 뒤덮은 미국의 성문화를 생각하면 배우의 의사와 감정에 상관없이 이 또한 거대한 여혐이라고 봅니다.......... 5. 결론: 뱀의 머리에 지렁이의 꼬리 초반부를 생각하면 사실 만듦새가 나쁜 작품은 아닙니다. 신선한 연출도 제법 있고, 호흡을 딱 한 화 분량으로 짧게 가져가면서 다음 화를 보게 하는 능력이 출중해요. 소재가 자극적이니 킬링타임용으로도 괜찮고요. 그런데 이게 끝입니다. 신선한 연출이라고 해도 같은 포맷으로 반복해 등장하니 진부해지고, 표현하고 싶은 건 많은데 얄팍하게 드러내기만 한 느낌이에요. 처음부터 가벼운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봤기에 기대가 크지도 않았는데, 초장에 힘을 다 써버리고 끝으로 갈수록 매력이 떨어집니다. 심지어 전개가 너무 뻔해서 중반쯤 보면 '지렁이 꼬리로 끝나겠구나...' 하는 예상이 됩니다. 이걸 끝까지 본 건 뒷 내용이 기대돼서가 아니라 어쨌든 별로였다는 얘기를 하려면 끝까지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저는 모든 완결된 상태로 세상에 나온 창작물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소재도 연출도 너무 게으르지 않았나 싶어요. 보면서 에에올 생각이 정말 많이 났는데 정말 그런 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아 이런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아류라고밖에는 못 부를 것 같습니다. 제작자의 노고와 초반의 신선함을 생각하면 1~2점정도는 주고싶은데 왓챠가 비슷한 작품 추천해줄까봐 무서워서 0.5점 줬어요. 역시 저는 쿠소일 거면 애매하게 철학 담으려 하지 말고 욕망에 충실하게 쿠소인 편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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