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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시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음 주의

스포일러 안 가림 다른 작품 얘기도 막 함

영화엘리멘탈
마카로니 23-07-13 09:34 48
1. 참 재미있었다
재미있었다... 그 외에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재미있고 잘 만들었는데 저로 하여금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종류의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영화는 무엇인가? 아마 저에겐 쿠소영화인 것 같습니다...) 아리애스터 영화에 9000자나 써놓고 이런말하기 뭐하지만 저는 작품 볼 때 보통 생각 많이 안 하고 1차원적으로 받아들이거든요. 엘리멘탈은 크게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적당히 산뜻한 영화라는 뜻 아닐까요?

2. 사실 저만의 의지로 볼 장르의 영화는 아니지만
사실 저는 영화관에 사람 5명 이상 찰 것 같은 영화는 자의로 잘 안 보거든요. 비주류가 되길 원해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그냥 그런 영화는 귀신같이 마음이 잘 안 가요. 나중에 기회 되면 보겠지만 굳이 영화관 가서 볼 정도는 아닌 미적지근한 감정만을 갖게 되네요. (영화표가 14000원씩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면 이렇지 않았을텐데요) 마침 메가박스 3000원 쿠폰이 탐라에 떠돌아다니고 보어프는 적당한 상영시간이 없던 참에 탐라의 모님이 재미있었다고 후기 남겨주신 덕에 거의 끝물에 보게 됐네요. (저 세 우연 중 하나라도 안 겹쳤으면 굳이 볼 생각 안 했을듯...) 그래도 가끔은 이런 마음이 따뜻해지는 얘기도 봐줘야하는 것 같아요. 어른이 보기에는 좀 나이브하고 유치한 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이잖아요. 그리고 사랑과 해피엔딩이란 언제나 좋은 거 아닌가요?

3. 어떤 의미에서든 가볍다!
이민자 및 인종차별에 대한 비유가 처음부터 꽤 직접적으로 나온다 싶었는데, 중반부 이후로는 은근슬쩍 흐려지더라고요. 메인 주제가 인종차별 타파가 아니니까 당연한 거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약간 싱거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야심차게 만든 세계관이 적용되다 만 기분이잖아요. 물론 그런 스탠스를 끝까지 이어가면 피로해지기도 하고, 완급조절이 필요하니 일부러 덜어낸 것이겠지만요.

모님의 좋은 감상 덕에 호기심이 생긴/원래 볼 생각 없었던/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중간에 프로메어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요, 프로메어에서는 버니시 차별의 톤을 균일하게 가져가서 좀 더 세계관에 대한 몰입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도 엘리멘탈에서 그려진 차별이 좀 더 현실에 맞닿아 있다 보니, 이렇게 직접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백인들이 보고 느끼는 바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말예요. 그건 그렇고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불 원소들에 비하면 웨이드는 태어날 때부터 인생 탄탄대로라 지나치게 나이브한 백인남성 그 자체였는데 처음에는 단점도 좀 있나 싶다가 결국 앰버를 사랑으로 감싸안아주는 완벽한 남자로 그려져서 그건 좀 별로네요. 세상에 그런남자가어딨어; 너도 아시안으로 태어났으면 그렇게 무르게 못살아!! 미소지니의 시대에 픽사는 되도않는 왕자님 주입을 그만둬라! 물론 제작자들이 1세계백인남성에 대한 무언가를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우리에게 주입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았겠죠. 근데 이민자-여성이라는 2중으로 약자인 포지션에 있는 앰버는 지금과는 달라져야 하는 미완의 존재인데, 그걸 완성시켜주는 건 웨이드지만 웨이드 스스로는 그냥 계속 웨이드라는 점이 역시 아니꼬워요.... 웨이드 스스로는 앰버를 만나 많이 달라졌다고 얘기하지만 극의 주인공이 앰버이니만큼 웨이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뭐가 달라진 건지는 안 와닿아서 더 그런건지도요.

그리고 이건 진짜 너무 영화에 이입 못 한 생각이긴 하지만... 가게 내팽겨치고 나가지 마!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일반 시민한테 대충 떠넘기지 마! 애초에 관공서에 그런 식으로 처들어가지 마! 냅다 애인한테 일가족 전체를 소개시키지 마! 이런 생각이 어쩔 수 없이 좀 들었어요. 저는 어른인가봅니다...

4. 좋은생각... 좋은생각...
볼 때는 꽤 만족스러웠는데 쓰다보니까 또 아쉬웠던 얘기만 잔뜩 하게 되네요. 그치만 좋았어요. 정말이에요... 좋았던 것들 좀 써봐야겠어요.

일단 가장 뇌리에 콱 박힌 건 역시 비비스테리아를 보러 가는 장면! 비비스테리아 신의 감정선도 화면도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게일이 앰버와 웨이드의 데이트를 도와주러 온 것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포인트였고요. 개인적으로는 꽃이 가득 피어나는 화면의 아름다움에 압도되면서도... 픽사의 기술력을 있는 힘껏 과시하는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너네 애니메이션 끝내주게 잘 만든다!

윈드볼 보러 가서 웨이드가 냅다 응원을 시작하는 장면도 좋았어요. 부끄러움 없이 자신에게 솔직하고 긍정적인 양기 캐릭터 현실에서 정말 드물잖아요. 있더라도 주변에서까지 늘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웨이드의 응원에 다들 반응해 함께 응원하고, 파도를 타고, 그 응원이 결국은 선수에게까지 가서 닿는 흐름이 정말 좋았어요. 이거야말로 현대사회에 필요한 다정 아닐까요? 이 장면에서 대립하던 앰버와 게일이 스포츠를 통해 마음을 열게 되는 것까지 정말 완벽해요.

원래 존재하던 관용어구나 인간 신체의 특징을 원소들의 성질에 맞춰 변형한 것도 정말 좋았어요. 특히나 클로드 겨드랑이에서 꽃이 자라는 장면 보고 정말 재치있다고 생각했지 뭐예요. 웨이드가 자기 몸을 볼록렌즈처럼 만들어서 불을 붙이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발상을! 과학이 감성을 위해 사용되는 건 정말 항상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앰버 가족의 이민자 스토리도 좋았어요. 특히나 아시안 여성이라면 이입할 포인트가 많지 않을까 싶어요. 희생이라는 주제가 부모님과 앰버, 앰버와 부모님을 넘어 웨이드와 앰버로까지 확장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뻘한데... 디즈니 작품에서는 늘 '희생할 용기'를 내면 살게 되는 것 같아요. 필사즉생 행생즉사 그 자체인듯... 공기 중으로 증발한 수증기가 다시 물로 돌아오는 엔딩은 꽤 예상할 만한 전개였지만, 그래도 아무도 죽지 않는 해피엔딩은 참 좋죠! 이전에 나온 '크라잉 게임'이 이 장면의 키포인트로 등장할 줄은 몰랐는데 이 구조도 좋았어요.

5. 영화 외적인 딴생각
후반부에 웨이드가 은퇴식에 난입해서 "우리가 만나지 않을 이유가 아주 많이 생각났어"라고 말하잖아요. 근데 그 다음에 대는 이유가 '너는 불이고 난 물이야' 외에는 생각나는 거 하나도 없고 그냥 지금 어떻게든 지어내고 있는 느낌이라 너무 웃겼어요. 그래 너 순정남이다... 진짜 헤어지기 싫구나... 근데 그렇게 할 말 없으면 그냥 다른 말로 시작하지 그랬어(ㅋㅋ)

한편 엔딩크레딧이 진-짜 길더라고요. 최근 본 영화 중에 제일 긴 것 같아요. 역시 픽사... 크레딧에 지나가는 제품들의 의미를 잘 몰랐는데, 중간에 Kolgate 치약을 발견하고 패러디라는 걸 눈치채서 굉장히 유쾌하다고 생각했어요. 엄청나게 많이 지나가던데 어떻게 이런 걸 다 생각해냈나 싶더라고요. 한편 영화 내에서도 영어권 생활자라면 좀 더 잘 와닿았을 언어유희가 꽤 있었어서 이 영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어 사용자들이 부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초반에 나오는 단편이 좋았네요. 리트리버 짱.

6. 저도 나름 보면서 울었거든요
저도 나름 제작자가 '울어!!!!!!!'하는 구간에서는 '네!!!!!!!!!'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MBTI F신 모님 후기 보고왔더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정말 T인 것 같아요. 별로 울지도 않았는데 잘 보고 나와서는 아쉬운 점 얘기만 잔뜩 하고 있네요. 다음 학기에 있을 합평에 대비해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연습을 좀 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저는 글러먹은 것 같습니다. 이것까지 쓰고 리뷰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무너진 앰버 가족의 가게와 파이어타운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파졌어요. 복구는 무슨 돈으로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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