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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다머환원의 굴레
마카로니 24-09-02 23:36 25
리어다머가 처음 해보는 것들을 모조리 성공적으로 끝낸 날 리어다머는 무화과의 안에서 빠져나와 옆의 빈 자리에 풀썩 쓰러지며 물었다. 어쩜 절 이렇게 잘 알 수가 있어요? 이페에서 이런 것도 알려주나요? 무화과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만 저었다. 리어다머는 손가락 사이로 물처럼 흘러내리는 무화과의 머리칼을 여러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좋았어요. 무화과는 여전히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리어다머가 그렇게 하도록 놔두었다. 무화과를 울게 만든 것이 누구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다리 사이를 적신 것은 오로지 리어다머였다. 그의 조상과 다른 체취가 나면서 성감대는 끔찍할 정도로 똑같은 리어다머 이외에는 없었다. 리어다머는 무화과의 손과 입술이 닿을 때마다 정곡을 찔린 듯한 얼굴을 했다. 리어다머가 무화과의 몸을 같은 방식으로 만졌을 때 무화과가 항상 리어다머와 같은 반응을 하지는 않았기에 리어다머는 그 과녁이 자신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하지만 무화과가 어디를 겨눠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유를 추측할 때는 헛다리를 짚었다. 이페라니. 무화과는 리어다머의 허무맹랑한 상상을 비웃었다. 리어다머는 새어나간 바람 소리를 어떤 종류의 웃음으로 생각했는지 무화과를 따라 웃었다. 그야말로 바보가 따로 없었다.

이페는 리어다머가 모르는 새 리어다머의 아주 많은 것을 알아냈고 또 그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리어다머는 근 며칠간 이페의 정보력에 아주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화과가 장담하건대 이페의 파일에 리어다머의 성적인 약점까지 적혀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페보다 한 수 위인 크레센트 랩이 작성했던 엘로힘의 서류에도 그런 것은 없었다. 엘로힘은 약아빠진 남자였다. 그것이 무화과가 엘로힘이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만들어진 이유였다. 그들이 엘로힘의 침대 사정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무화과의 머릿속에 모든 것을 집어넣었을 게 뻔했다. 그러지 못했으니 무화과가 일일이 연인의 몸을 탐험하며 지도를 작성하듯 뇌리에 하나씩 새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화과는 엘로힘과 관련되었다면 무엇이든 손우물에 모은 작은 열매들처럼 소중히 했던 시간이 원망스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리어다머는 리어다머조차도 모르는 리어다머를 무화과가 이미 알고 있다 놀라워하지만 무화과가 알기로는 스스로 모르는 것을 남이 아무런 단서도 없이 단번에 찾아내는 기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리어다머는 엘로힘으로 인해 그렇게 태어났고 무화과 또한 엘로힘이 멋대로 안겨준 기억 때문에 리어다머를 모를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대체 뭘 남기고 싶어 했던 걸까.

엘로힘은 무화과를 세상 어떤 것보다 사랑한다 말했지만 무화과가 줄 수 없는 것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욕심이 많아 모두 가졌다. 엘로힘이 양손에 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들-당연히 한쪽 손에 잡힌 것은 무화과였다- 때문에 무화과는 파괴적으로 괴로웠고 엘로힘이 썩어 사라진 지금도 그가 남긴 잔해들이 여전히 무화과를 괴롭혔다. 그가 그토록 남기고 싶어 했던 유전자는 애초에 무화과에게는 있지도 않은 것이라 무화과는 영원히 엘로힘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몰이해를 넘어 번식의 욕구가 역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무화과는 어쩌면 엘로힘이 자신 이외의 모두를 괴롭게 만들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그의 본능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엘로힘은 고작 금빛 머리칼과 투명한 녹색 눈, 그리고 엘로힘과 완전히 같은 위치에 있는 예민한 신경 다발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화과의 사랑을 짓밟았다. 그 결과가 지금 무화과의 침대에 누워 있다.
리어다머와 엘로힘 사이에는 무수한 공통점만큼이나 많은 차이점이 있었지만 리어다머가 사정하는 순간 그 모든 차이점이 부질없어졌다. 엘로힘과 닮은 리어다머의 건조한 피부에 묻어나오는 체취와 땀의 냄새는 엘로힘의 것과 달랐지만 정액의 냄새는 천편일률이었다. 한동안 무화과에게 정액이라고는 엘로힘의 것밖에 없었기에 지금도 정액 냄새를 맡으면 엘로힘이 생각났다. 엘로힘이 아닌 리어다머를 침대로 끌어들인 게 다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 더 이상 엘로힘과 리어다머를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기 힘들었다. 리어다머는 열화된 엘로힘일 뿐이라는 생각이 속절없이 무화과를 찾아왔다. 그는 사정할 때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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