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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리안언제나 여름의 상징
마카로니 24-08-29 22:36 23
올드로즈 저택의 오래된 옷장에는 이든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각기 다른 서랍에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이든과 세루리안이 바닷가에서 보내는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각자의 캐리어를 챙기기 시작했을 때도 이든은 집 안의 모든 경첩이 삐걱거리는 캐비넷과 옷장들을 머릿속으로 뒤져보는 것만으로 가져가야 할 물건을 모두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서랍 안에서 수영복을 꺼낸 이든은 자신이 시간의 흐름을 간과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언제 입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여성용 수영복들은 하나같이 어깨끈이 굳고 원단이 삭은 채였다. 이제는 뭐든 100년은 지난 일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물건이 낡는다는 걸 잊었어요. 이든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수영복들을 한가득 들고 나와 쓰레기통에 쑤셔넣었다. 거실 바닥에 앉아 티셔츠나 바지 따위를 작게 개고 그걸 캐리어에 집어넣는 것을 반복하던 세루리안은 이든의 말을 듣고는 물었다. 새로 살 거지?

이든과 세루리안이 휴가를 떠나기까지는 며칠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이든은 이미 사이즈도 다 알고 있을뿐더러 수영복은 오프라인에서 사는 게 더 어렵다는 이유로 드물게 쇼핑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세루리안은 그 옆에 버티고 서서 이든이 스크롤을 몇 번 내리다 말고 적당한 제품에 멈춰 결제 버튼을 누를라치면 참견을 얹어 이든을 성가시게 했다. 비키니는 절대 안 돼. 남편이랑 가는 여름 바캉스인데 검은색 입을 거야? 좀 더 귀여운 거 입어주면 안 돼? 남자 것도 나오는 디자인에서 골라줘. 커플 수영복 입고 싶어! 이건 너무 노출이 심한 거 아냐? 참다 못한 이든이 마우스를 내려놓고 세루리안을 흘겨보며, 그럼 당신이 골라요, 핀잔을 주자 세루리안은 기세가 한풀 꺾여 멋쩍게 말했다. 나는 여자 수영복은 잘 모르는데... 그러고 나서야 이든은 세루리안의 방해 없이 적당한 수영복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영복은 세루리안이 보기에도 제법 깜찍했고, 다른 남자들이 세루리안의 배우자의 가슴에 눈길을 주지 않을 정도로 얌전했다. 그래서 세루리안은 새 수영복을 입은 이든에 대한 기대만 간직한 채 도로 캐리어를 싸러 돌아갔고, 이든 또한 세루리안이 더이상 수영복 때문에 자신을 귀찮게 할 일은 없으리라 믿으며 다시 옷장의 문을 열었다.

사건은 이든이 충분히 방심했을 때 일어났다. 여름 휴가 내내 머무를 별장에 도착해 짐을 풀고, 해변에 나가기 전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이든을 기분 좋게 감상하던 세루리안이 별안간 이든이 뒤를 돌자마자 자리에서 튀어오르며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수영복 위에 걸칠 얇은 옷을 챙기던 이든까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왜 그래요? 기껏해야 벌레 따위의 답을 예상했던 이든은 이어진 세루리안의 대답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수영복이 엉덩이를 다 못 가리는데??"
"이 정도면 심한 건 아니에요..."

이든 또한 여성의 모습이라는 이유로 평소보다 더 몸을 드러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엉덩이를 반 이상 내놓는 것이 시류가 된 여성 수영복 시장을 이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수영복 위에 가운이나 담요를 두른 채로 나갈 생각이었던 이든은 의연하게 대답했다. 당신도 여자가 수영복 입은 걸 처음 보는 건 아닐 거 아녜요. 하지만 그 말투가 오히려 세루리안을 자극했는지, 세루리안은 이든을 번쩍 들어 침대에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둘 사이에 불이 붙으면 종종 겪는 일이기에 이든은 이때까지도 침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들한테 보여주고 싶으면 지금 나도 보여줘! 비록 세루리안이 억지를 부리며 수영복 밖으로 드러난 엉덩이를 깨물기 전까지만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든은 방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차마 믿을 수 없어 침대 위로 엎어진 몸을 일으키지도, 세루리안을 향한 타박을 완성하지도 못했다. 당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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