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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로기동성 간 사실혼이 인정되기도 하는 선택적 선진국의 양자역학적 국민들
마카로니 23-07-20 22:14 77
"형."
"어잉."
"집에 언제 가시려고요?"

임자헌은 흰색 런닝셔츠 바람으로 담배불을 붙이며 무심히 물었다. 천석현은 그 옆에 서서 임자헌의 담배를 뺏어 피우다가, 입에서 담배를 떼고 옆을 돌아봤다. 오늘로 둘이 함께한 주말이 3주째다. 양육권도 뺏기고 이혼도 당한 탓에 홀애비가 된 천석현이 임자헌의 재개발만 기다리는 낡은 복도식 아파트에 들이닥치는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었으나, 이렇게까지 오래 머무른 적은 없었다. 임자헌은 슬슬 함께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야구 경기를 보고, 아파트 복도의 난간에 양 팔꿈치를 댄 채로 담배를 함께 피우는 것이 익숙해짐에 위기감이 느껴지는 참이었다. 이 인간이라면 충분히 빚 지고 아파트도 팔아넘겨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절친한 형을 부양할 의사가 전혀 없는 동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석현은 하늘이 두 쪽 나기라도 한 듯 과하게 충격받은 얼굴로 말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잖아."
"대체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형 설마 전입신고 한 거 아니죠?"

임자헌은 착잡하게 남은 담배를 마저 빨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등본부터 떼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석현은 말 한 마디로 임자헌의 근심걱정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재주가 있었다. 천석현은 담배 하나를 해치우고 뻔뻔하게 임자헌의 담배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 결혼했잖아. 임자헌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예? 그 후 자신이 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임자헌은 방금 들은 말을 완전히 소화시키고 나서야 단전에서 힘을 끌어올려 소리쳤다. 예?!!

"설마 혼인신고도 했어요??! 그게 수리가 돼요?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말세야, 말세!"

굳건한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토종 남자 임자헌은 기겁해서 나는 동성애를 반대하니 어쩌니, 음과 양의 조화니 성병이니 하는 말을 퀴어퍼레이드 혐오세력마냥 아무렇게나 주워섬겼다. 진정하고 난 다음에는 마음 속의 발급 서류 리스트에 혼인관계증명서도 추가했다. 천석현은 옆에서 낄낄 웃다가 임자헌이 진정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재떨이에 짓이겨지는 담배에서 덩어리진 재가 한 뭉텅이 떨어졌다.

"임자야, 요새 그런 말 하면 큰일난다. 세상이 달라졌어."
"형 딸이 며느리 데리고 와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어허! 우리 딸은 안 그래."

임자헌이 어이가 없어서 비유적으로는 입을 다물고, 실질적으로는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천석현은 이때다 싶어 동생 놀리기에 돌입했다. 하여튼 너 방금 진짜 아저씨같았어. 팬티도, 어? 줄무늬가 뭐야, 줄무늬가. 나처럼 좀 젊은 감각을 유지하란 말이야. 최신 유행도 재깍재깍 업데이트하고. 담배도, 어? 디스가 뭐야, 디스가. 아저씨 쩐내 나. 이참에 맛쎄로 좀 바꿔. 그렇게 말하는 천석현은 핫핑크색 바탕에 조잡한 하트 무늬가 그려진 팬티를 입고 있었다. 임자헌은 천석현을 위아래로 훑다, 그 괴상망측한 트렁크 안으로 들어가 갉작거리는 손을 발견하고 말았다. 저런 인간한테 진지하게 대응해봤자 득볼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임자헌은 결국 한 마디 쏘아붙여주는 것을 참지 못했다.

"미쳤어요?"

내가 진짜 형 때문에 못 살아! 형이 내 속옷 지적할 때예요? 아니, 속옷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양말은 왜 자꾸 뒤집어 넣어? 똑바로 좀 벗어놓으면 덧나요? 그 말을 듣는 천석현은 변명도 않고 그저 인자하게 웃고 있다. 임자헌은 그 표정에 더 열불이 터져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아파트 복도라는 것도 잊고 소파에 흘리는 과자 부스러기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털 따위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 탓에 자신의 등 뒤로 옆집 주민이 저 집 아저씨들은 사이도 좋아, 중얼거리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척은 느끼지도 못했다. 혼인관계증명서는 깨끗할지언정 아파트에 사실혼 관계로 소문났음은 꿈에도 모른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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