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마기로기어느 서공이나 마음은 똑같겠지만
마카로니 24-01-31 23:59 53
오즈는 슌보다 반 뼘쯤 작았고 몸집이 크지도 않았다. 하지만 신체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슌은 오즈를 쉽사리 밀어내지 못했다. 위계가 영향을 미쳤는지는 슌 스스로도 잘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자조적인 외전이 스스로의 몸에 복종이 배어버린 것인지 돌아보기에는 좋은 타이밍이 아니었다. 아무 계기도 없었는데도 오즈가 여느 때와 같은 건조한 표정으로 슌의 위에 올라탄 게 방금 전이다. 오즈는 언제나처럼 방금 잠에서 깬 것 같은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한 번만 하자. 얼굴 위로 드리운 오즈의 그림자의 어두침침함을 느끼며 슌은 생각했다. 이대로 있으면 절대로 뭔가 뺏겨버린다. 슌은 위기감을 느끼며, 그러나 이런 순간에마저 약간은 장난스럽게 상황을 넘기고 싶은 욕망을 무시하지 못한 채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안 돼요, 싫어요, 이러지 마세요! 물론 그런 말만으로 원하는 바를 얻어낸 사례는 인류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즈는 슌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슌은 팔에 힘을 꽉 주고 오즈의 어깨를 힘껏 밀어냈다.

"아무한테나 이래도 돼요?!"
"너는 아무나가 아니야."

어머! 슌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로맨틱한 대사에 힘이 풀려 두 손을 얌전히 가슴 위로 올려놓았다. 강압적인 애정표현은 픽션에서는 꽤 잘 먹히는 소재였다. 사실 절 좋아하고 계셨던 건가요? 제대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실 뿐이고요? 슌이 그렇게 묻기도 전에 오즈는 슌이 왜 '아무나'가 아닌지에 대해 설명했다.

"너는 일단 키가 크고..."
"중요한가요?"
"아무래도 괜찮을 확률이 높아지지...?"

그리고 외전이니까 개선의 여지가 조금 더.... 오즈는 거기까지 말하다 말고 갑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화들짝 놀라 몸을 살짝 뒤로 물린 탓에 급정거하는 차처럼 느껴졌다. 괜찮은 건 뭐고 개선의 여지가 있는 건 뭔지, 오즈가 그 주어를 제대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슌은 내심 그 뒷말이 궁금했지만 오즈는 그 기대에 배반하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 서공이 화낼 것 같으니까 관두자. 오즈는 그렇게 말하고는 슌의 위에서 훌쩍 일어났다. 오즈가 하려던 행위를 결코 원하지는 않았지만, 슌은 자기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의 전개에 울컥해서 언성을 높였다. 제 의사도 신경써달라고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arrow_up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