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리어다머실전! 문호의 비기
마카로니 23-07-25 21:31 63
리어다머는 아직 마법이라는 개념보다는 인간 사회의 물리법칙이 더 익숙한 방문자였다. 완벽한 인간이었을 적의 리어다머는 '모르면 외우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리어다머가 마법사의 세계가 굴러가는 원리를 이해했건 이해하지 못했건 그는 이제 네덜란드 모 대학교 문호 지부의 지부장이다. 그래서 리어다머는 자신이 새롭게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세상의 문법을 활자 형태로 머리에 쑤셔넣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마법에 통달한 이들에게는 더없이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지만, 리어다머에게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심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리어다머는 관성을 핑계로 마법에 익숙해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구의 시간 속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리어다머는 마법사가 대법전의 일을 우선하면서도 사회적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지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마법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걸로, 인계의 자신이 했어야 했을 그 일은 처리된 걸로 '친다'니? 리어다머는 여전히 중력에 붙잡혀 있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봤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발표해야 할 안건이 있었던 회의도, 취합하고 도장을 찍어 옆 부서로 넘어갔어야 할 서류도 모두 마법이 처리해줄 수 있다는 건가? ...어떻게? 그 과정에서 실수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리어다머는 당뇨와 지구온난화를 미리 우려하는 수준의 불안을 마법을 생각할 때도 비슷하게 느꼈기 때문에, 마법의 편리함 대신 아날로그의 확실함을 택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임무를 갈 때마다 정직하게 연가를 낸 탓에 하반기가 막 시작되려고 하고 있는데 슬슬 연가 개수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리어다머는 한쪽만 납작하게 눌린 머리카락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로 랩탑 앞에 앉아 당일 연가를 제출하며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오늘처럼 정말 필요할 때 연가를 쓰는 것만으로 휴가일수도, 월급도, 직장 내 평판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리어다머는 이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마법을 사용하다 실수해서 고통스럽게 수습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대법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절대 개인 연가를 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고작 직업 때문에 부드러운 침구와 한쪽 팔 위에 옅은 금색 머리카락을 얹은 조각 같은 미남이 있는 침대를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800자 챌린지

게시물 검색
arrow_up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