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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다머불가에 내놓은 아기 부부
마카로니 23-07-17 22:36 112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마자 리어다머는 단잠에서 깨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좋은 향이 나는 미남이 해 준 팔베개를 베고 좋은 꿈을 꾸고 있던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도시의 화재 경보가 익숙지 않을 무화과가 겨우 상체를 일으켜 눈을 비빌 때쯤 리어다머는 이미 옷장 맨 아래에 넣어 두었던 빨간색 생존 가방을 둘러멘 참이었다. 무화과가 주도적으로 행동할 기회는 리어다머가 무화과의 손목을 잡고 급하게 두 층 분량의 계단을 뛰어내려간 후 현관문을 열고 나서야 주어졌다. 무화과는 때아닌 뜀박질 때문에 가빠진 숨을 한참 숨을 고르고 나서야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저도 모르겠어요..."

리어다머가 그렇듯, 그 누구도 이 소동의 원인을 모르는 듯했다. 인근의 이웃들 또한 같은 시그널을 듣고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와 웅성이고 있다. 무화과는 리어다머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도 익숙하고 친근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 다치셨어요? 어디 불이라도 난 걸까요? ...아뇨, 저희 집도 아니에요. 리어다머는 듣기는 좋지만 유의미한 정보값은 딱히 없는 짧은 대화를 금방 끝내고는 다시 무화과를 돌아보고 웃었다. 

"휴! 큰 사고는 아닌가봐요. 깜짝 놀랐죠? 저도 놀랐어요."

가로등 불빛에 언뜻 비치는 옅은 미소와 잠긴 목소리가 평소의 침착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다행히 온 동네 사람들을 신발도 못 신고 집 밖으로 뛰쳐나오게 한 원인은 금방 밝혀졌다. 리어다머의 집 맞은편 건물의 관리인이 나와 소리쳤다. 우리 건물 경보기가 고장났습니다. 화재는 없으니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관리인은 전해야 할 소식을 모두 전하고 들아가려다, 무화과와 리어다머 쪽을 보고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쪽 아기 부부도 어서 들어가세요. 사람들의 일제히 시선이 무화과와 리어다머 쪽으로 쏠렸다. 무화과와 리어다머는 옅은 베이지색 줄무늬가 그려진 파자마에, 똑같은 뜨개 양말을 신은 채로 여지껏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닌 밤중의 소동에 경황이 없어 손을 놓는 것을 잊은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둘을 뒤덮는 가운데, 무화과는 잡은 손을 타고 리어다머의 심장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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