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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다머사랑니 발치 대작전 ②
마카로니 23-08-10 18:12 74
아이보리색 셔츠를 입고 회색 벽 아래 앉아 흰 조명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무화과는 더할 나위 없는 미남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가둘 수 없다'고 말했듯, 리어다머는 무화과 또한 미남이라는 일반적인 단어에 가둘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리어다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문학적인 표현력의 부재가 원망스러워졌다. 아무리 양보해도 무화과를 문자만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가, 혹은 그 이상이 필요했다. 리어다머는 카메라를 조정하던 사진관 직원이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강한 빛에 지지 않고, 선명히 맞서고 있는 이목구비가 작은 화면 안에서도 확연하게 보였다. 심지어는 어색하게 웃고 있는 입모양마저도 완벽했다. 리어다머가 기여한 것은 한 가지도 없었지만 리어다머는 괜스레 뿌듯해져 어깨를 으쓱였다.

카메라 반대편에 앉은 무화과의 입술 위로는 리어다머가 새끼손가락으로 발라 준 컬러 립밤이 반짝거렸다. 리어다머는 무화과가 카메라 앞 의자에 앉고 나서야, 무화과에게는 그 무엇도 더할 필요가 없었을 깨달았다. 리어다머는 그저 무화과를 직접 보는 것보다 사진이 모자라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지만 모두 기우였던 것 같다. 샘에서 곤히 자던 무화과를 흔들어 깨워 당장 카메라 앞에 앉혀 딱 한 장만 찍었더라도 분명 완벽한 사진이 나왔을 것이다. 리어다머는 확신했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리어다머는 시간을 돌려 오늘 아침으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이 무화과의 머리를 세팅해주고, 잘 다린 셔츠를 입히고, 체리 맛 립밤을 발라줬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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