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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다머사랑니 발치 대작전 ①
마카로니 23-08-08 23:41 69
리어다머는 벽장에 넣어두었던 좋은 향이 나는 새 헤어왁스의 실링을 뜯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용기 안에 오래도록 갇혀 있던 산뜻한 민트 향이 한 데 뭉쳐 올라왔다. 이미 다 쓰려면 몇 달은 걸릴 만큼 남은, 쓰던 왁스가 드레스룸 콘솔에 놓여 있었지만 오늘이야말로 아껴두었던 비싼 왁스를 쓸 때였다. 리어다머는 지난 30분간 한 손에는 헤어드라이어, 한 손에는 금색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보이는 롤빗을 들고서 심혈을 기울여 무화과의 머리카락을 세팅했다. 매일 아침 앞머리를 보기 좋게 넘기고 출근하는 리어다머에게 가벼운 드라이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지나치게 아름다운 얼굴이 얼토당토않은 헤어스타일을 얼버무리지 않는지 분간하는 일이었다. 무화과가 몸둘 바를 모르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동안, 리어다머는 손바닥으로 무화과의 얼굴을 가려 보고, 거울에 비춰 보고, 눈썹을 찌푸려 보다 선명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론을 냈다. 증명사진 찍기 완벽한 날이다.

무화과는 증명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증명사진이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거나 신분증이 필요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화과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뺨에 손을 댄 채 리어다머를 찾아와 치통을 호소한 날, 그의 입 안에서 막 나기 시작하는 사랑니를 발견했을 때 리어다머는 깨달았다. 이제 무화과에게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신분증이 없으면 믿을 만한 의료혜택을 누릴 수 없는 시대가 와버렸다. 그래서 리어다머는 주말에 당장 일터로 달려가 문호편람과 온라인 문호 포럼 질문과 답변을 샅샅이 뒤져 마법사가 인계의 신분증을 발급받는 법을 꼼꼼히 메모했다. 리어다머는 사랑니가 나지 않았지만, 그 고통만은 리어다머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리어다머는 겪어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고통을 상상했다. 가엾은 무화과가 그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렸다. 리어다머는 다짐했다. 무화과 씨, 제가 빨리 믿을 만한 치과에서 사랑니 발치할 수 있게 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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