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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비가미You don't get too far
마카로니 24-02-05 18:03 32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하고 싶다는 일은 대체로 반대하셨는데, 벽에 가로막힐 때마다 나는 늘 서럽고 억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쯤의 시간이 흐른 후 되돌아보면 언제나 내가 틀렸었고 어머니가 늘 옳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내가 원했던 거라곤 바보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입는 것이나 친구들과 함께 2층 높이의 담벼락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그 때나 멋지게 보일 뿐 시간이 좀 지난 후 생각해보면 한심하고 부끄러운 것들 따위였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오신 어머니는 무난한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거다. 아마도 내게 후회할 일을 만들어주지 않으려는 어머니 나름의 노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흑역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후로는 나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라면 군말 없이 따르게 되었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농구를 그만둔 것도 그 일환이었다.

방학 동안의 재활로 흔적 없이 나은 경미한 어깨 부상은 후유증은커녕 흉터도 남기지 않았지만, 의사는 '한 번 탈구된 어깨는 영원히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침 중학교 졸업 시즌이었고, 어머니는 내가 농구를 하다 다시 부상을 입고 영구적인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것을 우려하셨기에 고등학생이 되면 농구부가 아닌 다른 부 활동을 할 것을 권하셨다. 나는 선수로 뛰는 대신 농구부 매니저가 되는 것으로 타협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합리적인 분이셨다. 중고등학생 시절의 부 활동에 일관성이 있는 것이 장래에 좋을 것이라는 설득에 넘어가주셨다.

중학 리그에서는 꽤 괜찮은 포인트가드였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도 얼마간은 키가 더 컸지만 아쉬워할 건 없었다. 어차피 선수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고, 어머니가 우려하시는 것처럼 나 또한 부상이 무섭기도 했다. 중학생일 때야 다들 고만고만하게 여물지 않은 체격이니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내 체중은 전혀 늘지 않았으므로 고교 리그에서는 분명 몸싸움에서 밀렸을 것이다. 더 좋은 선수들이 있으니 어쩌면 벤치 신세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계속하지 않기를 잘 한 것이라고, 나는 내내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지난 경험을 살려 팀을 위한 전략을 제안할 때마다, 누군가의 땀을 닦아줄 수건을 든 채 아쉬운 플레이를 보고만 있어야 할 때마다, 저곳에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종종 내가 원망스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왜 어머니가 반대할만한 일만 하고 싶을까. 한 번이라도 어머니가 내게 하도록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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