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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리안Shorts&belt
마카로니 24-01-30 23:55 56
입기 편한 옷은 언제나 하류층의 상징이었다. 노동할 필요가 없어 스스로는 지탱하지도 못할 옷을 남의 손을 빌려 입고 갈무리하는 귀족이 존재하던 과거에는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현대에도 그 잔재는 여전히 존재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옷차림으로 계급을 가늠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세탁과 활동이 용이한 옷감이 여럿 개발되었지만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신축성 없는 빳빳한 소재로 만든 맞춤 정장을 입었다. 자기 몸에 꼭 맞는 옷을 만들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고무줄이 들어간 기성복을 입는다. 한 가지 사이즈로 여러 체형을 아우를 수 있고, 입고 벗기가 쉽고, 가볍고, 세탁기에 아무렇게나 처넣어도 되는 옷은 곧 격식 없음의 동의어였다. 그리고 싱클레어 드 로는 신축성 있는 폴리 소재 PK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었다. 앞서 언급한 기준에 따르면 싱클레어는 그 누구보다도 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허리 부분에 밴딩이 있는 나일론 반바지를 입고도 제법 신경써서 차려입은 듯한 분위기를 냈다. 어쩌다 허리 사이즈 조절용 끈 대신 잠금쇠와 벨트 고리가 달린 면 소재 반바지를 입으면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덜 자란 십 대 소년들이나 입을 법한, 무릎 위로 껑충하게 올라오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그 아래 니삭스를 신은 것이 어색하지 않기도 했다. 블레이크는 더 이상 허벅지 가운데에 주름이 잡히도록 다림질한 반바지가 격식 차린 옷으로 여겨지지 않는 나이부터는 맨다리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블레이크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싱클레어는 자기 다리로 향해 있는 시선을 눈치채고는 작게 웃었다. 블레이크는 싱클레어의 웃음소리가 들리지마자 시선을 돌렸다. 싱클레어는 블레이크의 옆으로 걸어와, 블레이크가 앉아 있던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왜? 더 보지 그래. 나 다리 예쁜데."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는 거야?"
"객관적인 사실이야. 원래 유산소계 선수들이 다리가 예쁘거든."

넌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싱클레어는 바닥에 닿은 왼쪽 다리 위로 오른쪽 다리를 꼬아 올렸다. 검지손가락을 양말의 목에 걸고 천천히 끌어내리는 꼴이 스트립쇼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블레이크는 저 다음에 싱클레어가 어떤 식으로 무엇을 벗을지, 흰색 바지 안에 어떤 색 속옷이 있을지 이미 알고 있었다. 끌어내리기만 하면 금세 벗겨지는 트랙 팬츠는 상황을 야릇하게 만드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헛손질할 일이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벨트를 풀고 옷감이 허벅지에 스치는 소리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에는 제격이었다. 적어도 싱클레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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