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시노비가미濡男
마카로니 24-01-22 13:39 42
우리는 형을 죽이기로 했다. 어머니가 형의 품에 기대고 형이 그것을 밀어내지 않는 장면을 목격해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집에든 아버지는 필요했고 그것은 어머니가 얼마나 독립적이고 강하고 현명한 인간이든 간에 마찬가지였다. 형은 으레 장남들이 그렇듯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남들보다 빨리 자랐고 제 나이로 보이지 않는 형은 가만히만 서 있어도 부조리에 맞서 백 마디 논리정연한 말을 쏟아내는 어머니보다 큰 힘을 발휘했다. 여자 혼자 자식 셋을 키워내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손아래 형제들까지 장남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더군다나 형은 총명하기까지 했다. 형은 곧 성인이 될 테니 그때부터는 분명 집안의 기둥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형에게만 향하는 어머니의 특별 대우를 합리화하려 부단히 노력했으나 형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것만은 실패했다. 이미 우리는 어머니의 옆에 선 형을 아버지로 오해받는 것에 질릴 대로 질린 참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형은 어딘가 꺼림칙한 구석이 있어서 번번이 우리를 어렵게 했다. 으레 내 또래들이 권위적인 큰형에게 느끼는 거리감 따위는 아니었다. 형이 사라진다면 어머니는 슬퍼할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홀가분해질 것처럼 느껴졌다. 형은 우리보다 키가 컸고 기운도 셌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평범한 사람 두 명분의 힘을 이길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우리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계획을 세웠다. 함께 높은 곳으로 올라가 절벽에서 형을 떠밀 것이다. 겨울바다는 춥다. 형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죽든 살든 집으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800자 챌린지

게시물 검색
arrow_up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