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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비가미Voyage to the End of Ikarie
마카로니 24-01-18 23:10 49
1.
이카리 시카소노의 머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쿠바 세이의 얼굴이었다. 목 아래로 몸이 붙어 있었다면 그 얼굴에 떠오른 것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판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카리의 심장에서 출발한 것은 머리로 가지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카리는 단면으로 모든 것을 쏟아내고 빈 채로 죽었다.

2.
무서운 사람. 나를 이미 죽이고도 다시 한 번 죽이려고 한 사람. 내게 독을 먹여 키운 사람. 내가 아니라 아버지 편인 사람. 나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으면서 나한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사람. 언제고 나 같은 건 몰랐다는 듯 뒤돌 수 있는 사람. 나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준 사람. 나만 혼자 남겨져서 내내 기억할 사람. 내 머리를 쓰다듬고 끌어안고 입맞춰준 사람. 헤어지기 싫은데 자꾸만 작별인사를 하는 사람. 내가 단 한 번도 치명적으로 찌르지 못할 사람. 세이 씨는 그런 사람. 그렇다면 차라리 죽어버릴거야.

3.
고등학교 졸업식에 양복을 입고 나타난 하쿠바 세이는 근사했다. 이카리 시카소노는 막 스물이 된 자신의 모습도 평소보다는 나아 보이기를 바랐다. 어떤 졸업식에서나 그랬듯이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세이 씨와 둘이 있을 수 있어 기쁘다. 시카소노가 세이를 위해 준비한 꽃다발 속에는 열다섯 장의 편지지를 쓰레기통에 처넣은 후에야 완성된 러브레터가 들어 있었다. 세이는 아버지 대신 보호자 역할로 왔다. 세이가 시카소노에게 건네기 위해 들고 온 꽃다발도 딱 그만큼의 의미다. 시카소노도 알고 있기에 서두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말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카소노가 세이에게 원하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시카소노는 세이가 키워야 하는 어린아이에서도 졸업하고 싶다. 언제부터 가지게 된 감정인지는 흐릿하지만 전한다면 오늘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해요, 죽어도 좋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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