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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리안화분님이 보고계셔 下
마카로니 24-01-18 21:56 45
세루리안은 그 이후로도 꾸준히 몬스테라를 키웠다. 책임지고 화분 하나를 키우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사람 키만한 높이까지 자란 나무가 익숙해진만큼, 세루리안은 종종 몬스테라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 존재를 종종 잊었다. 오피스텔에 있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은 금방 휘발됐다. 그래서 세루리안은 이든의 어깨를 잡고 밀어붙이며 현관문을 열 때조차 화분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세루리안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손가락 안에서 여린 덩굴처럼 흘러내리는 이든의 머리카락이었다. 세루리안의 오피스텔에 몬스테라를 들인 후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것이었지만, 이든도 화분의 안부가 궁금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든의 입 안에서는 함께 나눠 마신 와인 맛이 났다. 세루리안은 눈을 감고 하는 뒷걸음질 몇 번만에 침대에 도착할 수 있으니 가끔은 좁은 집도 좋다고 생각했다. 세루리안의 등 뒤로 깔린 침구가 이든의 무릎이 스칠 때마다 종종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세탁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이불에서는 세루리안이 좋아하는 라벤더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이든의 목덜미에서는 장미 향이 나고, 침대 옆에서는 은은한 나무와 잎의 냄새가... 세루리안은 문득 그것을 느끼고는 눈을 번쩍 떴다. 세루리안은 귓바퀴에 입맞추고 있는 이든의 어깨를 가볍게 밀어냈다.

"이든."
"왜요..."
"이런 말 하면 이상한 거 아는데..."
"말해요."

이든은 약간 축축해진 이마에 헝클어진 앞머리가 달라붙은 채로 세루리안을 내려다봤다. 세루리안은 이든이 언제나 좋았지만 이럴 때는 특히 더 좋았다. 하지만 세루리안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이든의 시선뿐만은 아니었다. 세루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침대 옆에 우뚝 선 몬스테라를 바라봤다. 이든도 그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세루리안은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화분이 보고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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