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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리안화분님이 보고계셔 中
마카로니 24-01-17 17:32 43
물은 1주일에 한 번 꼴로, 겉흙이 말랐을 때 듬뿍. 이 정도면 적당하네. 세루리안은 짝다리를 짚고 서 스마트폰의 화면을 스크롤하며 생각했다. 당구협회 출근 때문에 오피스텔에는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들르고 있으니 그 정도의 관심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루리안은 볕이 잘 드는 위치를 고민하다, 침대 옆의 베란다로 통하는 미닫이문 앞에 몬스테라 화분을 내려놓았다. 종종 바람을 쐬어주면 좋다고 했으니 이쯤이 좋겠다는 실용적인 판단이 그 이유였다. 큰 애정을 갖지는 않았지만 세루리안은 오피스텔에 들를 때마다 잊지 않고 손가락으로 흙을 만져보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게 해 주고, 물에 젖은 천으로 잎이 찢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닦아주었다. 세루리안이 이든의 정원에서 키운 것은 이든에 대한 사랑뿐만이 아니었다. 어깨 너머로 배운 재주가 무섭다던가, 세루리안은 스스로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잎에 구멍이 뚫린 몬스테라를 제법 잘 키워냈다. 처음에는 아무리 크게 봐줘도 사람 상반신만할까말까 했던 몬스테라는 이제 제법 나무 태가 났다. 가끔 이든에게 도움을 청하기는 했지만, 세루리안이 스스로의 손으로 키워낸 첫 식물이었다. 세루리안은 도톰하고 매끈한 새 잎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늘 이런 풍경 속에 있는 배우자를 생각했다. 직접 무언가를 길러낸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구나. 세루리안은 이든을 조금 더 이해한 것 같아 기뻤다. 그날 저녁에 세루리안은 잘 자란 몬스테라의 사진을 찍어 이든에게 보여주었고, 이든은 잘 했다는 칭찬을 돌려주었다. 직접 키워보니 어때요? 감상을 묻는 이든을 앞에 두고, 세루리안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이든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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