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시노비가미동경의 이름으로
마카로니 24-02-24 21:00 69
넌 사실 비어 있니? 에누는 지로에게 물었고, 지로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만약 지로가 처음부터 손가락을 아홉 개만 단 채 태어났다면, 열 번째 손가락의 부재를 채워야 하는 빈 자리로 여기지 않을 것과 동일한 이치였다. 지로는 대부분의 시간과 사건을 따분하게 느끼도록, 그래서 무언가 파멸적으로 즐거운 것만을 갈구하도록 태어났다. 어떠한 계기도 없었다. 그러니 비어 있는 것은 에누뿐이다. 지로는 스스로의 기억이 비어 있을 때는 에누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고, 채워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에누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늘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누가 진정으로 비어 있다고 생각한 건 에누 자신이다.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는 지로에게 에누를 투영했을 뿐이다. 그건 어쩌면 외로움의 탓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로 또한 아마도 같은 이유로 에누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했기 때문에, 지로가 그동안 함께했던 에누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지로에게 끝없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래서 내가 비어 있냐고 물었어?
너는 비어 있기 때문에 따분한 거야?
만약에 네가 원하는 걸 돌려받는다면, 그래서 사는 것이 재미있어진다면. 그러면 나는 누구에게서 동질감을 느껴야 하지?

지로는 에누를 좋아했다. 은연 중에 에누는 본질적으로 자신과 같은 존재라고 정의했기에 그랬다. 에누가 아니라면 지로의 기행을 이해해줄 이는 없었다. 그래서 지로는 에누가 원하는 것을 돌려받지 못하기를 바랐다. 네가 그러면 나는, 이렇게 태어난 나는, 되찾을 것도 없는 나는 어떡하라고. 정말로 이 지루함을 견뎌야 하는 게 이 세상에 오로지 나뿐이라면……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800자 챌린지

게시물 검색
arrow_upward